저릿해 오는 가슴 때문에 몸이 아래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 길진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엔 먹먹한 가슴이 빨리 회복되질 않는다. 꿈에서 아빠가 불안하고 당황스러워하던 눈빛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꿈에서의 나는 성공한 여자였다. 높은 빌딩의 시원한 뷰의 통창 옆에서 누군가와 막 미팅이 끝난 후였다. 성공적인 미팅으로 스스로의 유능함을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다음 미팅 전에 아빠가 여기로 오시기로 한 걸 기억하며 시계를 봤다. 약속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의 유능한 비서인듯한 훤칠한 젊은 직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게 탭을 건네주며 보여줄 게 있다고 망설이며 얘기했다. 겁날 것 없다는 듯 자신 있게 탭을 바라보는데 그 작은 탭 안엔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당황한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의 아빠는 낯설었다. 어리둥절 주위를 살피는 아빠의 눈엔 불안과 절망과 그리고 놀람이 함께 있었다. 빌딩 로비인 듯했다. 누군가 아빠에게 다가와 도움을 주려했지만 아빠는 그들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내쳤다. 알 수 없는 그들이 아빠에게 해를 끼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능한 비서의 말에 의하면 아빠가 빌딩 로비에서 갑자기 기억을 잃으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치매 증세처럼 별안간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모두 사라진 상태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의 당당함이 내 당당함이었는데 그가 그것을 잃었으니 내 것도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옮겨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잠에서 깼다. 온몸도 긴장되어 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가슴이 조금 진정되니 정신은 더 맑아진다. 설마 아빠가 자신의 치매 사실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니었겠지? 그런 상상력이 뻗치려는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녘 불면 속에 피어오른 생각들은 대부분은 과한 상상력이라는 것을, 거기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삼류소설로 이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제 아빠는 엄마가 만든 반찬을 가지고 우리 집에 잠깐 들르셨다. 아마도 엄마의 얼른 가져다주라는 채근 때문에 집에서 입던 츄리닝 바지에 대충 윗옷만 걸쳐 입고 나오신 스타일이었다. 급히 반찬만 주고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늘어난 츄리닝엔 보풀이 잔뜩 일어나 있고 급히 입은 윗옷도 몇 년 전엔가 내가 사다 드린 낡은 후리스인데 역시 후줄근하다. 희끗한 머리와 후줄근한 옷이 세트가 되어 영락없는 기운 빠진 늙은이가 되고 만 것이다. 아빠를 배웅하며 내일은 나가서 아빠 집 옷을 깨끗한 걸로 사드려야겠다 마음먹었었다. 잠시 잊었던 그 기억에 쐐기라도 박듯이 이런 꿈을 꾸었나 보다.
며칠 전 돈 봉투를 두 개나 받았었다. 양가 부모님이 큰 아이 대학 등록금에 보태 쓰라고 주시는 돈이었다. 첫 입학 등록금을 내어 주고 싶다고 모아 주신 돈을 보고 마음이 아렸다. 평소 어른들의 소비 수준을 생각한다면 큰돈이다. 손자 등록금 없어 학교 못 보낼까 봐 걱정이시냐고 고마운 마음을 밉살스럽게 표현했다. 나도 나이가 더 들어 할머니가 되면 내 용돈을 아껴 손자 대학 등록금을 내주고 싶어 질까. 그 마음은 그저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어른들의 아껴서 주신 돈을 손대기가 미안해 봉투째 서랍에 넣어 두었다.
겨울 마감 세일 품목에서 색이 고운 후리스 점퍼와 말끔한 츄리닝 바지를 사서 아빠에게 갔다. 아직 멀쩡한 바지를 왜 버리라고 하냐고 손사래를 치신다. 집에서 입는 거니 괜찮단다. 그래도 더 늙어 보이는 아빠를 보는 게 싫다고 기어코 나는 낡은 바지를 벗기고 새 바지를 입으시게 했다. 훨씬 말쑥해진 아빠를 보는 내 마음이 환해졌다. 내 기이한 꿈이 만든 실천력이 꽤 유용하다.
자식을 키우는 마음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도 결국은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은 결국 내 마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빠는 딸이 쓸데없는 돈을 쓰고 사 온 바지가 마뜩잖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새 바지를 입은 말쑥한 아빠가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불효녀인 딸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다. 아빠는? 그러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