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는 일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by 소록소록


남편의 자가격리 덕분에 저녁밥을 각자 혼밥을 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 중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은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밥을 먹으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혼밥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역시 유튜브가 최고다.


최근에 읽은 핫한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을 검색했다. 애플 티브이에서 제작한 드라마 파친코로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이전에 소설로도 이미 미국에서 전미도서 수상 작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니 하버드 대학에서 작가가 한 연설과 질의응답의 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가장 조회 수가 많은 짤을 택했다.


처음엔 밥 친구로 시작한 유튜브였는데 밥을 멈추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데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목이 메었다. 한국에서 열여섯에 유학 온 한 남학생의 질문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엄마가 자신의 수입에 비하면 과한 지출로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은 엄마에게 어떤 감사의 표현을 하면 좋을까 하고 묻는데 학생의 눈빛도 질문도 따뜻해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 이민진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했을까... 작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으로 감동을 표현했다. 작가가 침묵하는 동안 나 역시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렇게 질문하는 그 자체가 이미 답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며 그 한국 학생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밥은 뒷전이 되고 어느새 나는 그 학생과 학생 엄마의 마음에 동화되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후벼파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리 희생적인 엄마도 아니고 또 고생하며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엄마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엔 자식에게 잘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을까. 잘못한 반성의 마음도 있긴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또 엄마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쉽게 무너져 버린다.


그날은 기숙사에 있는 작은 아이와 통화를 한 날이었다. 저녁밥을 먹은 후겠다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밝지 않았다. 밥 먹은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냥 좀 피곤하다고 얼버무렸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을 살짝 누르고 무심한 척 물었다. 힘들게 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아이는 내 미련한 질문에 그저 "엄마... 그냥 학교에 있으니 피곤한 거지..."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 학교란 공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하기도 하고 냉정하기도 하며 또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나를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 분위기를 예민하게 다 감지하는 작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투명하게 내비친다.


전화를 끊은 후 어떤 말을 해줘야 아이에게 위로와 힘이 될까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게 엄마의 진부한 격려의 말은 아니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아이에게 긴 톡을 남겼다. 현실에선 답답하고 답이 없는 시간들이 계속된다고 생각되겠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같이 선물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찾아온다고 그러니까 인생은 어쩌면 끊임없이 파도를 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지금의 힘든 파도를 겪으면 다음번엔 즐거운 파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옹색한 내 문장이었다.


엄마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일이다. 아이가 힘들 때 좀 더 세련되게 진심을 다해서 위로해 줄 수 없는 엄마이지만 그래도 네 아픔을 엄마는 공감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는 일은 자신의 짐을 이기고 버티는 일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어 할 만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정말 그런가는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희망이 아이를 붙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이는 야간자습이 끝날 무렵 아무렇지 않게 엄마 잘 자라고 다정한 톡을 보내왔다. 불안한 엄마의 마음을 다독이는 한 마디이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박완서 작가의 큰 딸인 호원숙 작가가 출연한 방송을 보았다. 웃는 모습이 박완서 작가의 미소를 닮아 있어 반가웠다. 오십이 넘어 작가로 데뷔했다는 그는 엄마와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 작가인 엄마를 소재로 글을 써 왔다고 말한다. 작가가 기억하는 엄마로서의 박완서 작가는 어땠을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실감 나게 이야기해 주던 엄마를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에 끌려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눈빛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그 작가가 참으로 부러웠다. 비가 내리던 밤에 봄비라는 시를 낭독해 주며 그 운치를 느끼게 해 준 작가의 엄마를 상상한다. 엄마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어른이 자신이 느낀 감동과 사랑을 아이와 함께 나누는 그 모습이 그려져 내 마음도 애틋해진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조금씩 쌓이면 좋겠다. 엄마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아름다운 방법으로 잘 풀어내서 함께 지내면 좋겠다. 엄마의 염려와 사랑이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든든한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이민진 작가에게 질문했던 한국 유학생의 아름다운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아름다운 박완서 엄마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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