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황홀하다
새로운 알림에 무심코 손가락을 대었는데 페이스북 앱이 열렸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앱이라 열어볼 일이 없었는데 익숙한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세은이였다.
"소록아, 나 세은이야. 내가 일본에서 사용하던 계정이 사라져 버려서 네 연락처를 못 찾아 계속 헤매고 있었어. 내 번호는 000-0000-0000이니 메시지 보는 대로 꼭 연락해~"
입꼬리가 순식간에 눈꼬리까지 닿을 뻔했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도 찔끔 흘러나왔나 보다. 신기하게도 최근에 며칠 동안 세은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었다. 어떻게 다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 첨단의 시대에 그녀를 찾을 방안이 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세은이는 나와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단짝 친구이다. 초등학교 때엔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가 중학교 때부터 친해지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시절엔 단짝이 된 오랜 친구였다. 그랬던 세은이가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 살면서 우린 인터넷 전화로 가끔 통화를 할 뿐 서로 만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고 각자의 삶의 반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세은이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서 연락이 끊겼었다. 그 요망한 인터넷 전화라는 게 번호가 허망하게 날아간 모양이었다. 서울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꼭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저런 계정을 통해 타고 들어와 내게 연락을 취했다는데 페북 알못인 내가 그 메시지를 한참 뒤에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린 후에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은아!" 그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세은이는 당장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우리에겐 이십 년이 지나도 어제 서로를 부른 것 같은 친밀한 발성이 있었다. 잠자고 있던 세은이에 대한 다정한 친밀감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꿀렁대며 터져 나왔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야~~~" 우린 둘 다 할 말을 잊었다. 80년대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의 장면이 이랬을까. 우리의 "야~~~"에는 긴 시간의 그리움과 애틋함과 그리고 애정이 묻어 있었다. 화면이 삭제된 채 그녀와 나의 전화기 속 음성만을 듣는다면 우린 그때 그 여고생 시절의 단짝 친구의 찰떡같은 대화로만 들렸을 것이다. 세은이와 나의 대화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툭툭 주고받는 리듬이 존재했다.
세은이는 얼마나 내 소식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쓰던 일본 계정이 사라져서 얼마나 멘붕이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 역시 할머니처럼 최근에 자꾸 네 생각이 나서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 중이었다며 기쁨을 표현해냈다. 세은이는 청소년기의 두 딸을 키우는 엄마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여고생 시절의 모습만이 자꾸 머릿속에 몽글거린다. 세은이가 더 조급하게 내 연락처를 찾은 이유는 그녀가 다시 태국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떠나면 나를 영영 찾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아... 태국!
우리는 또 까르르 소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에겐 태국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사회생활 초년기 시절에 함께 태국을 여행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새롭게 오픈한 인터넷 여행사에서 방콕 파타야 여행 상품권을 구만 구천 원의 획기적인 가격으로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고 있었다. 항공권과 호텔을 다 포함한 가격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우린 호기롭게 그 티켓을 사고 회사의 휴가 날짜를 맞추어 방콕으로 떠났다. 구만 구천 원의 가격에 태국 새우잡이 어선으로 팔려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호텔도 항공도 괜찮았고 다만 선택관광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몇 가지를 선택한다고 해서 나쁘지 않은 그런 조합이었다. 하지만 가이드 아저씨가 우리 둘을 봉고에 태우고 방콕에서 파타야를 이동할 때에는 이 봉고가 혹시 외딴섬으로 팔려가는 길이 아닌지 졸지도 못하며 조마조마해했었다. (결국 이 여행사는 우리의 여행 이후에 오래 버티지 못해 아쉽게 파산했다고 들었다.)
그때의 그 방콕으로 세은이는 남편 직장을 따라 떠난다고 했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그 이주가 내겐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일본으로 갈 때엔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재의 팬데믹 시기엔 일본이든, 태국이든 은하계의 머나먼 별로 느껴져 세은이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쓸쓸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 마음이 세은이도 느껴졌는지 태국으로 떠나기 전 부산을 들리겠다 약속했다.
세은이를 만난다는 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내 과거가 그리 나쁘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되는 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추억 덕분인 것 같다. 그런 과거를 생각하니 나의 현재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인연들과 일상들이 또 얼마나 소중하게 기록될지 나의 미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혹은 덧없고 허무한지 등등의 이야기를 습관처럼 했던 나는 그 말을 후회한다. 세월이 빠른 건 맞지만 덧없고 허무한 것은 아니다. 행복했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주고 또 그런 나를 미래의 나는 기쁘게 기억해 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 만하고 기쁜 일이며 황홀한 일임을 나는 또 새삼 깨닫는다.
세은이를 만나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옛일들을 더듬어 볼 생각이다. 평생 빛나기만 할 것 같았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한 잔 건배도 하고 싶다. 노래 가사처럼 삶은 계속되고 우리에겐 함께 삶을 지속해 나갈 동반자들이 있다. 세은이를 만날 일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