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의 <농담 한 송이> 란 시를 읽다 내 친구 주원이를 떠올렸다. 주원이는 대학시절 라면 안주에 소주를 함께 마시던 친구다. 내가 졸업 후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때 친구는 공부를 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비슷한 이십 년의 세월을 보낸 우리는 그 후 서로 다른 이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학위를 땄으며 작은 대학교에 교수 자리를 얻었다. 우리가 친구였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싱글 라이프를 잘 유지하고 있는 친구다. 얼마 전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저 끝방에 숨 쉬고 움직이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죽어도 이순신처럼 내 죽음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아니 알리지 못하는 상황이 될까 두려워. 가끔 생사도 확인하고 냉장고에 있는 찬밥도 나눠먹고. 그런 인생의 룸메이트가 이제 내 인생에 필요한 것 같아. "
잠시 먹먹해진 가슴으로 친구의 외로운 시간을 상상했다. 그때 나는 왜 지금 있는 남편도 어디로 보내고 싶은 심정이라는 농담이 입안에서 꿈틀거렸을까. 조용히 그 농담을 마음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농담이 적어도 지금은 친구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혼자만의 달콤한 시간이 친구에겐 무섭게 길고 지루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젊을 적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던 친구를 응원했던 말들도 지금 그녀에겐 더 이상 힘이 되지 않는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 침묵이 무거워 배시시 웃으며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주원아, 네 인생의 룸메이트가 지금 출장 중이야. 긴 남미 출장쯤이라고 할까. 긴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는 거지. 너무 긴 출장이라 오는 길이 가물가물해서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 너무 출장이 길었다며 그가 돌아오면 바가지를 긁어 댈 수도 있어. 그래도 뭐 양심이 있다면 두둑한 출장비랑 나눌 이야기는 많이 갖고 오겠지?"
친구와 나는 그제야 키득키득 웃으며 그 무명 씨를 마음속에 그려봤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를 환영할 마음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친구의 인생 룸메이트가 빨리 출장에서 돌아오면 좋겠다. 어디서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있진 않은지 눈에 힘을 주고 그 룸메이트를 찾으러 나서고 싶어 진다.
농담 한 송이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