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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y 21. 2022

그녀를 응원하는 일


관계의 깊이는 어떻게 결정될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늘 그와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그 사람을 그리워 한 만큼 그도 날 그리워했을까. 반가워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 준비가 안 된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마음을 드러내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건 아닌가. 아니면 의무감으로 만나는 내 마음을 들켜 상대를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등등으로 만남의 온도를 고민하게 된다. 카톡이나 문자로는 요령껏 숨겨왔던 감정이 실제 만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늘 십 년 만에 만난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의사의 신분으로, 나는 환자로 대면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십 년 전의 힘든 기억을 함께 공유한 사이다.  그 시절 그녀는 남편의 간병으로 힘들어 했던 시기가 있었고 몇 년의 애절한 투병 끝에 남편을 보내고 어린 아들과 남게 되었다. 몇 년의 투병이 그녀를 지치게 할 만도 했는데 그녀는 최선을 다해 남편을 간병했고 남편을 보낸 후에도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접했다. 나는 늘 그녀가 걱정스러웠지만 선뜻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안부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몇 년 후 동네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의 아들이 잘 자라서 그녀와 좋은 동지가 되어주고 있다는 좋은 소식도 들렸다. 보이지 않지만 나는 소심한 방법으로 그녀가 잘 지내기를 기도했다. 



오늘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어떤 말을 건넬까 고민을 했다. 내가 그녀를 응원했던 마음을 아마 그녀는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서 힘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단순히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는 걸로 내 마음을 정리해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우리가 알고 지냈던 십 년 전의 모습보다 약간은 더 야위었고 나이의 흔적도 보였다. 우린 그저 미소 지으며 바라봤다. 잘 지내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생뚱맞게 따뜻한 웃음만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의 미소가 이제는 한결 편해진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 웃는다. 



내가 당신을 걱정했노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당신을 생각한 깊이가 이렇게 깊은데 그 마음을 당신이 알고 있었냐고 생색내는 것도 우습다. 그냥 그녀가 잘 지내고 있었고 지금 그런 그녀를 만나 기쁜 내 마음만 표현할 뿐이다. 나도 그녀의 마음을 깊이 알 수는 없다. 떠나간 남편과 함께 우리가 즐거운 추억을 공유했었음을 가볍게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게 진료를 잘 봐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질 뿐이었다. 



상대가 내게 갖는 마음의 깊이를 알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나 보다. 내가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것을 소심하게 응원하는 것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그녀는 편안한 미소로 계속 환자를 볼 것이고 또 간간이 쓸쓸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의 바람이 그녀를 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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