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기도

by 소록소록

2인 병실을 선택한 건 내 의지였다. 일인병실은 너무 비쌌고, 다인실은 밤새 잠을 잘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당일 입원 절차로 오후 늦게 수술 시간이 잡혀 있었다. 공복 시간은 늘어나고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수술이 끝나 마취에서 덜 깨 몽롱한 채로 병실로 올라간 건 저녁 식사시간이 끝나고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병실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티브이에서는 뉴스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대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지도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나는 간호사의 손을 부여잡고 티브이를 좀 꺼달라고 애원했다. 저만치 달아나 있던 내 영혼이 몸속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보호자로 온 언니와 간호사가 자꾸만 잠에 빠져드는 나를 깨웠다. 멈춰있던 장기가 다시 제 기능을 하기 위해 계속 큰 호흡을 내뱉어야 한다고 했다. 의식하지 않았던 호흡이 숙제처럼 한 번, 두 번 세어가며 노력해야 하는 노동이 되었다. 말을 하지 못하니 청각이 더 예민해진 것인지 옆 침대의 환자와 보호자의 목소리가 마치 나에게 말하듯 가깝게 들려왔다. 작고 여린 목소리의 환자가 뭔가를 요구하면 보호자인 남편은 불평을 늘어놓거나 버럭대며 처리해 주는 것 같았다. 남자가 버럭댈 때마다 나도 괜히 마음이 쪼그라들었지만, 환자는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다시 잠이 몰려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자다가 갑자기 불빛이 환해지면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남자의 짜증 가득한 소리와 환자의 중얼거림은 이어졌다. 기운이 없어 뭐라 말도 하지 못한 채 참다가 다시 잠이 드는 일이 밤새 반복되었다.



옆 병상의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을 처음 본 건 다음 날 점심때 즈음이었다. 육십 대 초 정도의 나이로 키가 크고 건장하며 단호한 표정을 가진 아저씨였다. 잠시 보게 된 환자에게는 오래 눈길을 줄 수가 없었다. 오래전 화상 사고를 당했는지 얼굴 피부가 온전하지 못했고 한쪽 눈은 아래로 처져 있었는데 눈빛은 이미 시력을 잃은 듯했다. 나의 짐작으로는 심한 화상으로 인해 몸속의 장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병원을 계속 오가는 상황인 것 같았다. 환자는 너무 연약했고 보호자는 너무 드세었다. 내 마음은 쉽게 환자에 대한 연민으로 변해서 보호자의 투덜거림이 계속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호자의 불손한 태도에도 여전히 나긋한 태도로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환자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병실에서의 둘째날 저녁이 되었다. 일찍 저녁을 먹고 그들은 일일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방안에서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한 옥타브 높은 격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병실 밖 휴게실에서도 같은 드라마의 소리가 최대한의 볼륨으로 흘러나와 마치 스테레오 사운드로 온 병동을 흔드는 것 같았다. 목 통증보다 소음이 더 힘들게 느껴졌지만, 낮에 본 환자의 얼굴이 아른거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홉 시가 되니 드라마도 끝이 났고 모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신기하게도 병원 밖에서는 초저녁 시간일 텐데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깊은 잠이 아니었는지 나는 밤새 다양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내 수술을 걱정해 주던 엄마와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꿈속에서 괜찮다며 더 과장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버럭 지르는 소리를 듣고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남자는 화장실에서 양동이를 가져와 콸콸대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받아내고 있었다. '아이씨...'를 연신 내뱉으며 성질을 내는 남자 곁에서 환자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변명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오줌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주머니 속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좁은 방 안에는 지린내와 남자의 짜증과 환자의 중얼거림으로 혼탁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낮에 환자는 신장투석을 받았고 간호사가 이뇨제 약을 주며 지금 먹으면 새벽 4시 정도에 배뇨가 될 거라며 괜찮겠냐고 물었던 게 떠올랐다. 환자는 스스로 배뇨를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화장실을 미처 가지 못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갑자기 오물이 흘러내려 자다 깬 보호자가 받아내는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다 젖을 뻔했다는 보호자의 투덜거림을 들으니 나 역시 아찔한 마음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남자는 우리가 깨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짜증과 우당탕 소리를 내며 양동이를 화장실로 가져가 버리고 헹구는 일을 했다. 자신의 옷이 다 젖었다며 '에이씨!'를 몇 번 더 반복하고 나서야 그 소란이 잠잠해졌다. 남편과 나는 죽은 듯이 누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보호자의 심정에 감정이 이입되어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환자는 뭔가를 요구하듯 중얼거렸는데 남자는 '에이 무슨 잠꼬대를 하고 그래?' 하며 한마디로 일축하고는 잠들어 버렸다. 그 후로도 환자의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나지막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나 하고 어둠 속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의 언어는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의 멀고도 광활한 지역에서나 쓸 것 같은 그런 말이었다. 처음엔 잠이 든 남편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혼잣말이었다. 기도문처럼 줄줄 이어졌다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한 호흡으로 길게 이어지는 중얼거림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그녀의 기도는 주저함이 없었고 그냥 툭 치면 나오는 마법의 주문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기도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혈압을 재기 위해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면서 잠에서 깼다. 새벽의 그 소란 속에서 잠을 설친 것치고는 푹 잘 잤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깨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투닥거리며 아침의 일상을 맞이하고 있었다. 병원 밥을 나눠 먹고 냉장고에서 후식을 챙겨 함께 먹는 소리를 들으니 어제의 소란이 꿈이었나 싶기도 했다.



사실 첫날부터 나는 환자의 남편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같은 환자의 심정으로 몸이 얼마나 힘들 텐데 좀 편하게 보호자 역할을 해 주지 못하는 건가. 저렇게 짜증을 낼 것 같으면 하지나 말지 왜 다 해 줄 거면서 좋은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가 등등의 생각이었다. 밤 소란 다음 날 아침에 보호자를 보는 내 마음은 간사하게도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다소 불친절한 성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덜거림은 그저 말버릇일 뿐 그는 온종일 한국말이 서툰 아내의 손발이 되어 요구사항을 다 듣고 있었던 거였다. 화상이 어제오늘의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아 그가 아내를 돌보아 온 시간은 족히 수년은 된 것 같았다. 그들의 투닥거리며 하는 대화가 더 불편한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 중앙아시아 쪽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타인과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가난한 자가 가진 자의 것을 받는 것에 혹은 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당히 구걸하기도 하고 또 아낌없이 내주기도 하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타인이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보다 끈끈한 유대감이 있는 존재인 듯하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영혼을 가진 그들에게 고작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도덕의식만으로 무장되어 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진다. 그들은 내게 지난밤의 소동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도 없었고 뭐 인생이 다 그런 게 아니겠냐는 태도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소란이 아무 일이 아닌 거로 느껴지는 이상한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담당의사를 만난 후 나는 퇴원 절차를 밟았다. 진통제가 섞인 약을 받고 주의사항을 들은 후 남편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있었다. 많이 빨아 탈색된 환자복을 벗고 시끄러운 소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상쾌한 공기를 큰 숨으로 들이마시면 내 통증이 다 가라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짐을 다 정리하고 병실을 나서면서 보호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에게 남겨진 시간과 공간이 떠올라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수고하시라는 말만을 멋쩍게 하는데 그 남자도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룻밤 아니 이틀 밤을 함께 보낸 동지들이 나누는 어색한 미소였다.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내 침대에 누워서도 그들이 생각났다. 어젯밤은 무사했는지, 그리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투닥거리며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하루가 또 얼마나 길고 지루하게 지나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나는 그녀의 그날 밤 기도문을 따라 해 본다. 어쩌면 잠 오지 않는 밤, 그녀도 나를 위해 기도문을 읊어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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