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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Oct 13. 2022

낙타도 울게 하는 마두금 소리

몽골 여행 3


 몽골 여행을 준비할 즈음 나는 몽골의 전통 악기 "마두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낙타의 눈물'이라는 다큐 방송을 보고 적은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였다. 낙타라는 동물이 순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성질이 고약한 데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방송에서는 어미 낙타가 새끼를 낳은 후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겠다고 뒷발을 차며 고약한 성질을 드러냈다고 한다. 모성애라는 것이 동물의 자연 본능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새끼는 젖을 못 먹어 힘없이 골골대고 어미 낙타는 젖을 물리기 싫어 발버둥을 치니 돌보는 주인도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때 어떤 이가 몽골 악기 '마두금'을 연주하는 이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가 마두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낙타가 눈물을 흘리며 순해지더라는 이야기는 동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순해진 어미 낙타에게 조심스레 새끼를 내밀어 젖을 물리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나는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어미 낙타가 음악소리를 듣고 순해진 그 감성은 무엇이며, 동물도 감화시킨 놀라운 악기 '마두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두금이란 말 그대로 말머리장식이 악기에 붙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배수아 작가의 책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는 '말머리장식 호궁'이라고 소개되는데 모양은 첼로 모양과 비슷하고 의자에 앉아 다리에 끼고 연주한다. 두 개의 줄이 첼로의 현에 해당하는데 말총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단 두 개의 줄로 다채로운 음정을 모두 소화해 내는 것도 신기하고 음색은 마치 사람의 음성과 비슷해 편안함을 준다. 부드럽고 그윽하게 낮으면서 아득한 초원에 울려 퍼지기에 최적의 소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깊이가 있다. 그러니 낙타도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았을까.


 여행 두 번째 날 드디어 내게도 마두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의 패키지여행에는 옵션관광이라는 항목이 있기 마련인데 거기서 나는 몽골 전통 음악 연주라는 옵션을 선택했다. 그 음악에 마두금 연주가 빠질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게르 식당 옆에 위치한 작은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초등학교 강당 같은 무대에 의자와 몇 개의 악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첼로보다 작은 사이즈의 마두금도 있고 콘트라베이스처럼 아주 큰 것도 있었다. 줄은 두 줄, 역시 악기의 상단에 조신하게 고개를 숙인 말머리 모양 조각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전통의상 델을 입고 들어왔다. 화려한 색감의 원피스에 허리에 가죽을 두르거나 조금씩 다른 장식을 가미한 형태다. 작은 마두금은 앉아서 허벅지에 악기를 끼운 채 활로 그으며 연주했고 콘트라베이스처럼 큰 마두금은 서서 연주하는 모습이 콘트라베이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외 다리에 끼고 두드리는 작은북과 소형 기타처럼 생긴 악기, 그리고 마림바 형태의 맑은 소리의 타악기를 함께 연주했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쳤고 간간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중국의 경극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높고 쨍한 소리를 내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는 넓은 초원에서의 마두금 소리였는데 작은 강당에서 함께 어우러져 나는 음악엔 그 정취를 느낄 수가 없어 아쉬웠다. 다만 마두금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곡에서는 마두금 소리를 단독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비올라 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은 춤이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등장한 젊은 무용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혼자 독 춤을 추었는데 그 흥이 보통이 아니었다. 손끝이나 어깨의 움직임 등은 우리나라 전통무용과 비슷하지만 더 단호하고 호기롭고 당당한 몸짓이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동작인 듯 보는 이도 에너지가 솟게 된다. 공연의 열기는 뜨거웠고 어느새 우리도 그 음악과 춤을 즐기고 있었다. 반전은 그 무용수가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우리의 아침을 배급해 주는 직원이었다는 것이었는데 밤의 모습과 아침의 모습은 예리한 눈썰미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서 우린 한참 웃었다.


 열기가 가득했던 공연이 끝나고 게르 밖으로 나서는데 싸늘한 공기가 느껴져 옷을 여몄다. 누군가가 '눈이다!'라고 외쳤다. 정말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9월에 내리는 몽골의 눈이다. 넓은 까만 하늘 아래 하얀 게르 지붕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황홀함은 인간이 계획한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의외의 눈이 선사한 아름다움과 음악의 여운과 그리고 몽골의 마지막 밤에 마음이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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