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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Oct 26. 2022

다시, 봄

 딱 봐도 거지 할머니였다. 꾀죄죄하고 주름진 얼굴에 합죽이 입, 눈은 툭 불거져 나오고, 몸은 비쩍 말라 굽어있었다.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향해 있었는데 불안해 보였고, 입은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데다 거친 피부와 주름 때문에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옛날 할머니들처럼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말아 올려 비녀를 꽂은 듯이 작은 막대기로 쪽을 진 모양새도 그녀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한 가지였다.


 처음 할머니를 마주친 곳은 바다가 보이는 야외 카페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이것저것 먹을 것을 벌려놓고 놀고 있었다. 어디선가 동화책의 마귀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노인 한 분이 눈앞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 우리를 향해 계속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처음엔 못 알아들어 "네? 할머니?"라고 다시 물어야 했다. 할머니는 그 대응에 신이 난 표정으로 내게 뭔가를 말하려던 참이었다. 함께 있던 동행이 내게 눈짓을 했다. 얼른 일어나자는 뜻이었다. 할머니의 모양새만큼이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품 안엔 할머니처럼 생긴 깡마른 강아지가 까만 눈을 굴리며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 할머니한테 악마가 씌어 있을지도 몰라. 괜히 애들이랑 같이 있는데 말 걸고 그러면 그 악마의 영혼이 옮겨올 수도 있으니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야!" 진지한 태도로 신을 믿는 내 동행은 이렇게 말하며 겁을 주었다. 악마가 깃든 영혼이라니…. 그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구걸을 하며 껌을 팔러 다니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나 역시 할머니의 독특한 생김새와 행동에 눈길이 가긴 했지만 헨젤과 그레텔의 마귀할멈처럼 갑자기 음흉한 의도를 내보일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한 할머니였다. 첫 만남 이후에 나는 비슷한 장소에서 할머니를 두어 번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는 귀신이 들렸다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끔찍한 사건의 충격으로 살짝 정신이 나갔다고도 했다. 동네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중얼거리고 다녔고 사람들은 귀신이 옮겨올까 봐 그녀를 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 없다는 듯 당당한 팔자걸음을 걸으며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오랜 세월 길거리 생활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웠고 행동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다는 듯이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풍경을 골똘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눈여겨보게 된 건 할머니의 독특하고 화려한 패션 스타일이었다. 꾀죄죄한 얼굴과는 달리 그녀가 걸친 옷들은 색상이 화려하거나 특이한 형태였는데 그 조합이 구식이긴 해도 꽤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어딘가 허영기 넘치는 복부인 아줌마의 스타일이기도 했고 또 어떤 때엔 긴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입어 화려한 런웨이를 걷는 모델 복장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옷에는 언제나 핸드백을 팔에 걸치는 센스를 발휘했는데 그 스타일이 70년대 여성 잡지에서나 본 듯 새로워서 왕년에 한 가닥 했을 할머니의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초라한 할머니의 얼굴과 깡마른 몸에 걸쳐진 복고 스타일의 옷, 그리고 당당한 걸음걸이는 우스우면서도 꽤 그럴듯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다채로운 옷은 헌 옷 수거함에서 완성된 것이라고 했다. 요즘 헌 옷이란 게 해어지거나 험해서 못 입는 게 아니라 유행이 지나서, 작아져서 등의 이유로 버려지곤 하니 그 옷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칠십 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것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골라 이리저리 걸쳐보았을 그림을 상상하니 귀엽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작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두 마스크를 끼고 땅만 보고 걷던 시기에 나는 할머니를 거리에서 마주쳤다. 꽃샘추위로 몸을 움츠린 채 빠르게 걸어가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는 봄 냄새 폴폴 나는 연둣빛 꽃무늬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크고 화려한 구슬이 박혀 있는, 한복에나 어울릴 듯한 커다란 클러치 백을 가슴에 안은 채, 시선은 저 멀리 허공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그녀의 당당한 활보는 답답한 마음을 뻥 하고 뚫어주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활기찬 뒷모습 옆으로 하얗게 몽우리 진 목련이 새초롬하게 걸려 있었다. 정말 봄이구나 생각했다.


 할머니를 까맣게 잊은 채 두 계절을 보냈다. 찬바람이 매서워지기 시작할 즈음, 광복동에 나갈 일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광복동 입구로 올라오는데 저 앞에선 누군가가 광고 전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화려했던 광복동은 코로나 때문인지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채 빛을 잃은 거리 같았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전단지를 받는 사람보다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내 순서가 되었다. 전단지를 건네받은 후 무심코 건네준 이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바로 그 할머니였다. 마치 지인을 만난 것처럼 내 얼굴과 마음이 반응해 괜히 혼자 머쓱해졌다. 할머니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애매모호한 시선을 던지며 여전히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고 있었다. 바쁜 사람처럼 전단지를 손에 쥔 채 앞을 보고 걸었지만 온통 신경은 할머니를 향해 있었다. 할머니는 얼굴이 더 까매져 있었고, 작은 몸집은 더 쪼그라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화려했던 봄 의상은 어디로 간 채 초라하고 얇은 밤색 코트와 볼품없이 때가 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다시 뒤돌아 할머니를 바라봤다. 등이 더 굽은 것인지 공손하게 전단지를 주려고 일부러 굽힌 것인지 콩벌레처럼 동그랗게 말린 등이 보였다. 여전히 쪽 찐 머리는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위풍당당하게 걷던 그 자세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 등 뒤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전단지만 휑하니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광복동 거리에 춥고 삭막한 겨울이 와 있었다.


 광복동 근처에 들어서면 여전히 나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할머니를 찾게 된다. 숨바꼭질하듯이, 전단을 주고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도 다시 확인하게 되고, 몸집이 작은 노인을 멀리서도 찾게 된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발견하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슬쩍 얼굴을 확인해 보지만 할머니는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해 추웠던 계절은 잘 넘겼는지, 품 안에 안고 있던 강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할머니의 패션 감각은 여전한지 마음속에 질문은 부풀어 오른다. 이번 겨울은 너무 춥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디선가 갑자기 할머니를 다시 마주친다면 이번엔 용기를 내어 알은체할까 보다.

 "할머니, 이제 곧 봄이 다시 오려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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