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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Oct 03. 2022

몽골의 별

몽골 여행 2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단점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빡빡한 일정이 아닐까 싶다. 몽골 여행을 예약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몽골은 일정 빡빡하게 다닐 코스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일정이라고 알려준 내용이 언뜻 봐도 헐렁헐렁하기 짝이 없었다. 보러 온 것이 자연이니 그곳에 내려다 주면 자연을 즐기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었다.



 우리가 묵은 게르의 뒤편으로는 약간의 경사가 진 언덕이 있었다. 언덕이라고 해 봤자 높지도 않고 잡초와 돌덩이만 있을 뿐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그 언덕 위로 올라가 보았다. 높지 않은 경사에도 숨이 차오른다. 울란바토르  평지 기준이 해발 1500미터라고 했으니 약간만 위로 올라가도 꽤 높은 고도가 되고 만다. 언덕에 오르니 평평하게 보였던 초원이 입체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초원과 어둑해지는 하늘의 색감이 감히 인간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경지다. 초원과 하늘의 경계가 약간 붉고 노르스름해지면서 해가 지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가 소리를 다 삼켜버린 듯 고요했다. 우리도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밤을 기다렸다. 우리에겐 몽골에 온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별을 봐야 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밤 9시 이후부터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질수록 별들이 많이 나타날 거라며 달이 뜨기 전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몽골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인데 게르 주변엔 숙박객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 조명을 피해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래시를 켜고 어둠을 뚫고 언덕을 올라갔다. 온갖 동물들의 똥이 여기저기 지뢰처럼 포진해 있기에 플래시를 단단히 잡고 조심조심 걸었다. 땅만 보고 조심조심 걷다 이쯤이면 많이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숨을 잠시 멈추었다. 까만 하늘은 그저 무의 공간이었고 오직 빛나는 별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에 빠져야 존재를 드러내는 별들의 아름다움은 신의 계획이었을까. 바라보는 우리의 존재조차 잊게 하는 어둠과 반짝임이었다. 초원의 하늘은 넓기도 넓어 별들은 써라운드 음향처럼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누군가는 천문 관측대의 가짜 별 보기 돔에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주근깨가 왜 하늘에 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가고 별 보기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별자리 앱을 이용해서 찾아보니 목성이다. 가장 알이 굵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 주변의 수많은 별들도 별자리 앱을 이용하니 그들의 이름을 다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별자리 이름으로 별 모양을 찾고 있지만 이 별자리를 찾아낸 이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았을까. 작가 알퐁스 도데가 <별>이란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는 프랑스 아를 지역의 시골 언덕의 별밤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아름다운 소설이 탄생하게 되는 것도 자연의 힘이구나 싶다.



 별 하늘의 사진을 찍으려고 실은 몇 주 전부터 카메라 공부를 했었다. 반 수동 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해서 이리저리 찍어도 보고 별을 찍는 방법을 검색해서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실제의 별을 바라보니 이 광경을 찍을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보며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화면상에 별빛은 표현되지 않았다. 삼각대까지 챙겨갔지만 이러다 별을 육안으로도 보지 못할 것 같아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눈 안에 가득히 담아나 보자 생각했다. 나중엔 목이 뻣뻣해진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하늘은 더 까매지고 별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마술처럼 많아진다. 별똥별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툭 떨어져 내린다. 별들의 잔치라는 말은 아무 데서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별들은 더 많아졌고 넓은 하늘과 깜깜한 초원 속에 내 존재는 너무 보잘것없이 작아졌다.



 오들오들 떨며 별을 보다가 게르로 돌아왔다. 네 개의 단출한 침대가 둥근 모양의 게르의 벽 쪽으로 줄지어 있었고 가운데 탁자, 그리고 한편엔 샤워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있다. 전통 게르를 변형한 여행자를 위한 현대식 게르다. 바깥에서 너무 떨고 온 탓인지 제대로 난방이 시작되지 않은 게르가 그리 춥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 게르 천장을 바라본다. 텐트 모양으로 생긴 고깔 천장에 담요 같은 큰 이불이 늘여 뜨러 져 있다. 그 밖으로 비추고 있을 별을 상상했다. 간간이 바람 소리도 들린다. 황량한 초원 가운데 누워 있는 내 위치가 낯설고 신기하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던 까닭에 스르르 모두 잠이 들었다. 아침의 초원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감동시킬지 기대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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