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보내며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2023년 새해다. 한 해가 지나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고 느낀다.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가 되면 나는 작년 새해에 적었던 소망들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 잊고 있었던 소망도 있고 늘 마음에 품었던 것들도 있다. 대단한 소망은 아니기에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메모에 불과하지만 이 의식을 빠뜨리면 잡고 있던 인생의 줄을 놓아 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비슷한 목표를 다시 끄적이는 것이다.
이번 해도 같은 목표를 적어볼까 하는데 마음은 새해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 한 살 더 먹는 나이가 아쉬워서도 아니고 지난해 가 너무 행복해서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아니다. 그건 아쉬움 때문이었다. 지난 2022년은 작은 아이의 고3 입시가 있었다. 12월은 아이가 지원한 학교에서 합격 발표가 있는 달이었다. 작년에 큰 아이의 입시를 치러본 나는 마음이 애닳아도 그건 제 운에 따르는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자 다짐했지만 12월이 되자 그 마음은 자꾸 흔들렸다. 하나씩 발표가 나기 시작하고 이 학교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학교에서 합격 소식을 받지 못하자 초조한 마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설마 죄다 떨어져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아이에겐 당연히 될 거라고 좀 더 기다려보자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2월의 거의 끝자락이 되어 두 학교에서 합격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두 군데가 다 우리의 기대와는 좀 달랐기에 우린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아이의 뜻대로 한 곳을 정하고 등록 절차를 마쳤지만 그리 기쁜 마음이 되지는 못했다. 원래 가고자 했던 학교가 아닌 데다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학교가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이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아이의 성적보다 낮은 아이들이 그 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마음을 더 아래로 추락시켰다. 차라리 아이가 너무 속상하다는 표현을 우리에게 했다면 그나마 우리도 그 마음에 얹어 속상함을 풀었을 텐데 아이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 괜찮다는 안 괜찮음이 내 마음을 꽉 붙들고 편해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후로 난 계속 '왜 그랬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라는 두 질문을 계속 반복하며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고도 그 생각이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때 내 손에 잡힌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집이었다. 남편이 애정하는 작가라 무심히 옆에 놓인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여덟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마치 지금 내 상황을 작가가 빤히 다 아는 듯 부끄러운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는다. 과거의 어떤 부분이 지금의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과거는 이미 겪은 일이니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나 미래는 가능성만 있기에 상상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작가는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란 용한 점쟁이들이나 맞출 수 있는 복잡 다양한 미래가 아니라 조금만 깊이 생각한다며 충분히 예상 가능한 미래이기에, 다시 말하면 평범한 미래이기에, 우리가 그 미래를 생각하며 오늘을 산다면 현재를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소설 안에는 또 다른 판타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두 연인은 임사체험을 하면서 하나의 삶을 세 번 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번은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는 일반적인 삶, 다음은 현재에서 과거를 기억하며 점점 어려지는 거꾸로의 삶,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삶은 자신들이 겪었던 미래를 다 알고 난 후 살아가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미래를 기억한 채 다시 살아가는 세 번째 삶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까. 어떤 두려움도 없이 현재의 삶을 아끼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작은 아이에게 내가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면 입시에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의 생각에서 머무른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생각이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꾸 필름을 과거로만 돌리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작은 아이가 궁극적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면 결국은 제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을 걸을 거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 부분인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붓다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한 번 더 쐐기를 박는다.
"붓다는 세상에서 겪는 고통을 첫 번째 화살에 비유했다. 그리고 첫 번째 화살을 뽑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당해야만 하는지 따지다가 다시 맞는 화살을 두 번째 화살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화살은 뽑고 난 뒤에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 여전히 첫 번째 화살이 있으니까... 그와 달리 첫 번째 화살을 뽑고 나면 즉각적으로 기쁨이 찾아온다. 그건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에 찾아오는 기쁨, 단순한 기쁨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만족스럽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게 바로 첫 번째 화살을 뽑는 일이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작가의 말 p.272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 꽂은 채 버둥거리던 내 모습이다. 이미 두 번째 화살을 맞았으니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다행히 처방은 존재한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게다가 다가올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생각하는 일. 그 미래가 지금의 순간을 이끌어주리라 믿어야 한다. 과거는 이미 내 앞에서 사라진 바람이기에 새로운 바람을 느끼고 따라가는 일만이 내게 남아 있다.
주말에 가족 모두 아이가 다닐 새 학교로 나들이를 갔다. 아이는 넓은 캠퍼스와 낯선 환경에 설레어했다. 아이가 주로 공부하게 될 학교 건물과 도서관, 식당, 기숙사를 함께 둘러보니 우리 눈앞에 아이의 가까운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아이는 지금의 순간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의 두 번째 화살의 나쁜 기운이 아이의 미래에 뻗치게 할 수는 없다. 박힌 화살을 빼는 것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작은 아이에게는 평범하고 밝은 미래가 다가오고 있을 테니까. 이제는 미련 없이 2022년도를 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