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모른다
<오, 윌리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각자가 이해하는 타인은 내가 믿고 싶어 하는 작은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루시와 윌리엄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결코 모른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결국은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경험 속에 있을 뿐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우리가 잊고 지나가버리는 짧은 순간을 포착해서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황에서 이렇게 느끼는 감정이 왜 그런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는 놀랍다.
<오, 윌리엄>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라는 책의 후속작이기도 하고 결국은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가지치기 소설의 한 권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루시가 자신에 대 한 이야기를 일인칭으로 기술했다면 <오, 윌리엄>은 자신의 첫 번째 남편에 대해 루시가 기술하는 형태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니지만 내가 옆에서 관찰한 윌리엄의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의 삶이 주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잔잔히 그려낸다. 윌리엄이 가진 세계와 내가 믿고 있는 윌리엄의 세계가 다르듯이 온전한 나를 이해해 주는 타인도 우린 기대하기 힘들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내는 인물은 거대한 나무의 여러 개의 가지들처럼 존재한다. 각자 고유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그들이 다른 가지에 어떻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영향을 받은 가족들의 경험은 단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며 오해와 이해 속에서 삶은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각자는 이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한 개인이며 우리는 누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지만 우리의 존재 자체가 각자 신화이며 미스터리란 말로 삶의 가치를 표현한다.
한때는 루시 바턴이 열렬히 사랑하고 가장 오랫동안 자신의 안정된 집의 역할을 해 주었던 윌리엄은 루시에게는 기품과 권위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종종 투명 인간이라고 느꼈던 것과 반대로 그에게는 그만의 기품과 위엄으로 가족과 그들의 딸들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이혼 후에 윌리엄이 세 번째 부인에게 버림을 당하고 그의 어머니 캐서린이 간직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윌리엄은 서서히 그 권위를 잃어간다. 밤중에 공포를 느끼고 전 부인인 루시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약한 자신을 보여주는 윌리엄을 보면서 작가는 그저"오, 윌리엄!"이라고 외칠뿐이다. 그건 다시 그 감탄사 뒤에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붙여도 하나 어색하지 않은 감탄사이기도 하다. 우리 각자의 삶은 그만큼 고귀하고도 또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위로'이다. 루시는 그녀가 한때 사귀었던 남자의 집에서 하나의 불빛을 발견한다. 저 멀리 타워 건물에서 매일이고 밤새 켜져 있던 불빛을 보면서 거기서 일하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다. 사랑하지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남자의 곁에 누워 불빛을 바라보며 받았던 위로의 그 수많은 밤들이었지만 그녀는 그 불빛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 루시가 그동안 받아온 수많은 위로의 시간들의 실체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 의해 위로와 사랑을 느끼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존재가 아닐까. 실체가 없는 것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면서도 또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존재도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대단할 것 없지만, 각자의 아픈 기억들과 현실을 간직하며 그 현실 속에서 각자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위로를 준다. 사소한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며, 작가는 작은 이야기 속에서도 날카로운 삶의 정수를 발견하고 은근하게 속삭인다. 너의 삶도 그렇지 않냐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인물들의 마음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이유다. 타인의 경험을 잘 알지 못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다시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