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크리스마스트리에 진심인 나라다.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톨릭의 영향 아래 존재해 온 나라이기에 크리스마스가 절대 축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거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불빛이 끊임없이 이어져 우리의 여행을 환영하는 듯 가슴을 설레게 했다. 화려한 불빛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언니는 자신은 아마도 스페인형 인간인 것 같다며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야 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네모 반듯한 구역의 큰 도로마다 각각 다른 문양의 화려한 전등이 차도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에 맞지 않게 날씨는 매우 포근해서 외투를 벗은 채 가벼운 옷차림에 산타 모자를 쓴 사람도 눈에 띄었다.
첫 숙소는 유명한 가우디의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스튜디오형 호텔이었다. 스페인의 호텔은 테라스 유무를 중요한 선택사항으로 두는데 역시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거리나 풍경은 스페인 여행의 감흥을 다르게 만든다. 우리 숙소의 테라스 의자에 앉으면 바로 코앞에 CG처럼 나타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뾰족한 첨탑이 눈앞에 있었다. 비현실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광경 앞에서 우린 여행의 첫날을 기념했다.
sns에 진심인 젊은이들에겐 여행지에서의 맛집이나 유명 볼거리를 손쉽게 검색해서 찾아다니겠지만 안구 건조와 노안으로 검색에 취약한 우리는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거리를 걸었다. 뭔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픈런을 하고 있다면 그 집이 맛집이요, 웅성대고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다면 거기가 우리가 찾는 관광명소임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낸 가게는 우리가 아침 조식으로 가장 좋은 별점을 준 365라는 빵집이었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길래 따라 줄을 서 그들이 시키는 커피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샌드위치를 샀는데 역시 우리가 기대한 맛 이상이었다. 에스프레소는 아니지만 커피는 진하고 깊었으며, 오렌지 주스는 오렌지를 벌컥벌컥 들이 마시는 느낌이었고, 샌드위치는 빵의 담백함과 내용물의 충실함이 어울려 거북하지 않은 포만감을 주었다. 착한 가격은 우리를 두 번 감동시켰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첫 코스로 선택한 곳은 몬주익 성이 있는 몬주익 언덕이었다. 높은 언덕에서 아직은 낯선 바르셀로나 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지하철을 타고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언덕을 오르니 예상대로 바르셀로나 시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하늘은 넓고 티끌 없이 파랬으며 그 아래 아기자기한 벽돌 빛 건물들이 조화롭게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한쪽은 넓은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내가 보며 자랐던 부산의 바다와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어젯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불빛이 이곳이었던 것 같다. 몬주익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르셀로나는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루 종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 바라다본 지중해를 따라 항해를 시작한다면 어디에 닿게 될까를 생각했다. 지도가 없었던 시절 이 사람들은 저 바다 너머를 어떻게 꿈꾸었을까. 누구라도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탐험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며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지 않았을까. 창작과 예술에 대한 욕구 또한 이런 본능과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