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호안 미로의 미술관이다. 학창 시절 미술책에서 간간이 보아 왔던 호안 미로의 작품은 추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명확한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다. 호안 미로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로 스페인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라고 한다. 이 미술관 역시 호안 미로가 젊은 미술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지은 것이라고 하니 카탈루냐라 지역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특별한 것 같다. 미술관 건물 역시 몬주익 언덕의 아름다운 전망 뷰를 지닌 아름다운 건축물로 호안 미로의 친구였던 건축가 조셉 루이스 세르트라는 이가 설계했다고 한다. 예술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아름다운 미술관의 분위기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초등학생 아이들의 단체 관람이 눈에 띄었다. 곳곳에 쪼그려 앉거나 심지어 엎드려 작품을 보며 따라 그리기도 하고 깨알 같은 글씨를 적기도 한다. 아이들의 관찰하는 눈빛이 꽤나 진지해 보인다. 호안 미로 가 본다면 흐뭇해할 장면이다. 미술관의 대부분은 호안 미로의 기증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일부 전시관은 새로운 예술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는데 내가 방문한 시기엔 마침 독일에서 활동했던 파울 클레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울 클레의 작품은 내가 알던 추상적인 작품 외에도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세밀한 관찰로 이루어진 자연과 인체에 대한 노트와 세밀화 그림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예술가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존재이구나 생각했다.
미로의 작품은 강렬한 색감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과 푸른 하늘, 그리고 지중해 바다를 보고 자란 이들의 자연스러운 영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작품에는 여자, 새, 별에 대한 그림이 많았는데 화가가 주로 영감을 받은 소재였던 것 같다. 그림뿐 아니라 판화, 직조, 그리고 조형물까지 그가 시도한 분야는 다양하다.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상상하고 표현하는 화가의 작업에는 한계가 없다.
미로 미술관의 작품들을 보면서 둘째 아이 버찌를 떠올렸다. 버찌는 어릴 적부터 작은 수첩을 늘 들고 다녔다. 수첩에는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여러 그림과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자신이 발명한 기계의 설계도를 그리기도 하고 그에 대한 설명과 아이디어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 웃긴 만화의 세밀한 그림을 매우 정확한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었다. 그 수첩들을 보물처럼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파울 클레의 전시를 보니 그런 메모나 드로잉 북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구나 싶어 혼자 웃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버찌의 그 반짝반짝하던 생각들과 그림의 재능을 더 빛나게 가꾸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올라온다. 버찌에게 톡으로 그 마음을 전했더니 버찌 자신은 오히려 그 시기를 잊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진다.
미로 미술관을 뒤로하고 나와 걷는데 한국의 늦가을의 거리 풍경이 느껴진다. 큰 나무에서 갈색빛이 된 잎들이 떨어지고 따뜻한 햇볕이 비치고 움츠린 사람보다는 자유롭게 햇살을 만끽하며 걷고 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웠던 한국에서 훌쩍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은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섬세하게 건드려댄다. 여행이 주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