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여행
여행을 계획할 때 맛집에 대한 검색은 필수가 된 것 같다. 맛집에 대한 정보는 흘러넘치고 맛집 투어가 여행의 목적인 경우도 많으니 여행에서 맛있는 집을 찾는 건 당연한 여행 준비인 것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면서 비행 편, 숙소, 그리고 도시 내 이동 교통편, 그리고 주요 관광지의 입장 예약까지 하다 보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미 눈과 마음은 피곤해진다. 여행이란 게 완벽한 예약이 꼭 필요한 일인가 싶어 닥치는 대로 해보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유명 관광지 앞에서 입장을 못하거나 줄을 서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일을 생각하다 보면 다시 머리를 싸매고 예약하는 방법을 검색하게 된다. 그 수고에 이어 맛집까지 검색해 가는 일은 내게 쉽지 않은 노동이었다.
스페인 맛집에 대한 기대는 컸다. 즐겨보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의 음식은 미적으로도 훌륭했고 재료 역시 내 구미에 맞는 것들이었다. 출연진들이 먹고 감탄하는 모습은 그것이 연기이든 아니든 간에 꼭 먹어보고 말리라는 의지를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집에 대한 내 검색 내용은 옹색했고 맛집을 찾기 위해 모르는 길을 찾아 헤매는 일도 내 체력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검색했던 누구나 알만한 바르셀로나의 맛집이 우리의 목적지인 카탈루냐 광장과 가까웠다. 구글맵의 안내와 싸워가며 결국 이 근처라 확신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 근처의 가게에 줄을 서 있는 이에게 이 가게를 혹시 아느냐고 물어봤는데 그 가게가 바로 이 가게라며 내게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우린 영어 발음대로의 가게 간판을 찾고 있었고 그 가게는 전혀 달라 보이는 스페인어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었던 거였다. 길도 잘 못 찾는 데다가 간판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 맛집에서 먹는 일은 역시 쉽지 않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스페인에서는 타파스를 먹어봐야 한다기에 여러 가지 타파스 중에서 인기 있다는 꿀 대구, 맛조개를 주문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샹그리아. 꿀 대구는 말 그대로 대구에 꿀을 발랐는지 달콤한 맛이 나고 맛조개는 우리가 아는 그 조개의 맛인데 신선하고 탱글하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렇게 안주 같은 음식을 음미하면서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닐까. 여러 접시를 맛보기 수준으로 먹으면서 대낮부터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다. 이들은 아침에는 간단한 커피와 빵, 그리고 점심을 좀 더 거하게 정식으로 먹고 시에스타 이후에 바에서 간식 같은 스낵을,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에 다시 수프나 간단 음식을 먹는다고 여행 책자에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실제로 본 것은 시시때때로 거리의 타파스 식당에서 타파스와 술을 먹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것처럼 그들은 가벼운 술을 마시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첫 번째 맛집이 성공적이어서 스페인의 대부분 식당들이 이런 양질의 타파스를 제공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 후에 우리가 먹었던 다른 타파스 집에서 미식 나라에도 당연히 맛집과 비맛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검색하는 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먹어본 음식 중에 홍합으로 만든 스튜도, 작은 오징어를 튀긴 깔라마리도 맛있었다. 기대했던 해물 빠에야는 너무 짰다. 다른 음식들의 간이 적당한 것에 비해 빠에야만 이렇게 짠 이유가 뭘까 궁금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다음에 빠에야를 먹을 때엔 소금을 많이 넣지 말라는 말을 꼭 덧붙여야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스페인에서 만족스러웠던 것은 커피와 커피 가격이었다. 이태리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돌아온 친구가 이태리에서 스페인만 넘어가면 신기하게도 커피 맛이 형편없어진다고 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내 입맛에는 괜찮았다. 진하고 고소한 맛이 강한 커피를 일 유로대에서 마실 수 있었는데 낮은 기대 때문인지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빵 종류도 맛도 빠지지 않는다. 진한 초코를 넣은 크루아상도 담백한 빵에 여러 가지 맛있는 하몽이나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도 훌륭하다. 가볍게 맛있는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스페인의 먹거리가 쉽게 내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스페인이 츄러스의 원조라고 하더니 정말 백 년 가게에 츄러스 가게가 있었다. 잘생기고 훤칠한 청년들이 떡가래처럼 길게 뽑아져 나오는 쫄깃한 츄러스를 따끈하고 진한 초코시럽과 함께 서빙해 주고 있었다. 초코가 매우 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초코는 진할 뿐 단맛이 강하지 않다. 따끈하고 쫄깃한 추러스를 진한 초코에 푹 찍어 한입 베어 무니 여행의 고단함이 사라진다. 아침 이른 시간에도 츄러스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남녀노소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초코에 열심히 츄러스를 찍어 먹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다.
여행에서 맛집 검색이 수고로운 노력이긴 하지만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의 큰 부분의 추억이 된다. 음식이야말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일이니 기억에도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여행지를 다시 찾고 싶은 이유도 그곳의 맛의 기억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게 스페인의 맛 기억은 타파스, 추러스, 샌드위치, 커피, 그리고 양질의 스페인 와인이 아닐까 싶다. 다시 찾게 된다면 좀 더 열심히 맛집을 검색하는 데 노력을 더해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