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떠나보내기

by 소록소록


둘째 아이를 보내기로 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먼저 병원을 들려야 했다. 기숙사에서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를 받고 입소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검사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 보니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함께 있는 동네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검사를 하고 나오는데 소아과 간호사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는 거냐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받는데 감회가 새롭다. 19년 전 여기 병원에서 작은 아이를 낳고 3주 정도 병원의 산후조리원에서 지냈었다. 그런 아이가 다 큰 성인이 되어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를 받고 대학교로 들어간다니 뭔가 뜻깊게 느껴진다.


기숙사에서 사용할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떠나니 마치 나들이를 가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도 한적하고 중간에 들러 사 먹는 핫도그도 맛있었다. 아이는 집을 떠나는 게 기분이 좋은 것인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가는 동안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차 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전자제품, 상어 인형 등 아들의 애장품만 다 실려 있다. 자전거를 당근으로 사야 할지 그리고 어떤 강의를 신청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아이를 지방으로 보내는 내 마음은 조금 쓸쓸하고 아픈 일이었다. 아이가 첫 번째로 원하는 학교가 아닌 데다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이기도 했고 항상 곁에 있을 것 같은 막내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손이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착각도 한몫했다. 불안하고 서운하고 그리고 속상했다.


학교에 도착했다. 기숙사 건물로 가니 일요일이라 한적하고 몇몇의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사감 선생님을 만나 방을 안내받았다. 3층 10호. 방문을 두드리니 룸메이트가 나왔다. 말끔한 인상의 서울 청년이었다. 짧게 인사를 하고 짐을 넣었다. 단정한 방에 침대, 책상, 옷장이 두 개씩, 그리고 작은 화장실과 샤워룸이 딸려 있는 방이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짐을 다 밀어 넣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가 다닐 과학 기술원은 그 주변에 과학고등학교, 과학관 등등이 모여 있는데 동네 자체가 한적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밥집을 찾아 함께 따뜻한 백반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학교생활과 기숙사 생활에 대한 끊임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세탁을 할 때 헹굼을 한 번 더 해서 세제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둥, 패스트푸드를 너무 자주 시켜 먹지 말고 웬만하면 밥을 먹으라는 둥, 그리고 고등학교 선배님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보라는 둥, 나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얼마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서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이별의 시간을 좀 더 늦추었다. 낯선 곳에 아이를 어떻게 두고 와야 하나 나는 점점 마음이 긴장되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우린 너무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이다. 넓은 캠퍼스에 찬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썰렁해졌다. 기숙사 앞에 아이를 내려놓고 떠나려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작은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나보다 키도 몸무게도 훌쩍 큰 아이를 꼭 끌어안았는데 마치 작은 꼬맹이를 안은 기분이다.


처음 아이를 떼어 놓은 것은 서너 살 정도 떼 어린이 놀이방이었다. 큰 아이와 터울이 22개월밖에 나지 않아 그 당시 나는 아이 둘을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다. 동네 아파트 단지 1층 놀이방에 오전 세 시간만 놀고 오게 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꼬드겨 친구들이랑 놀고 오자며 놀이방을 덥석 등록해 버렸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아이는 놀이방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우린 아침마다 쫓고 쫓기는 마라톤을 한바탕 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그 정도면 포기하고 안 보낼 만도 한데 그때의 나는 내 시간이 너무 중요했다.


작은 아이를 한 번 안아주고 돌아서려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를 다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나가면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뒤를 돌아보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꺼억꺼억 통곡의 눈물이 나왔다. 마치 못 보낼 데에 아이를 두고 온 엄마처럼 서럽게 울었다. 얼마나 내가 작은 아이를 아끼고 사랑했는지 나는 울면서 깨닫는다. 사랑의 감정이란 게 이렇게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제어가 안 되는 감정이란 걸 나는 오십이 넘어서야 알게 된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고서야 나는 눈물을 그쳤다. 옆에서 운전하던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린이 놀이방에 가지 않겠다며 울고 떼쓰는 아이를 떼어놓은 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지금의 내 마음만큼 엄마와 떨어지는 게 슬프고 힘들었을까. 이렇게까지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내 감정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때문인가 아니면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차선의 학교에 남겨지게 된 이유 때문인가. 이 복잡한 감정을 나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 나가면 좋겠다는 기도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작은 아이가 기숙사 방 정리를 다 했다며 인증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말끔히 정리된 방이 보기 좋았다. 큰 아이는 자신이 작년에 기숙사 처음 들어갔을 때 한동안 너무 쓸쓸했었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동생에게 당분간 외로운 마음을 잘 이겨내라는 격려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남겨져 생활해야 했을 큰 아이의 마음도 그려지고 그 마음을 다시 작은 아이가 겪어내야 하는 사실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저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일 텐데 괜히 엄마인 내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다.


도착할 즈음 다시 작은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주말에 토플 시험을 치겠다며 여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혼자 긴장하며 해야 할 것들을 챙기고 있었나 보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다 빠져나간 방은 쓸쓸하다. 여기저기 물건을 어질러 놓고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는다고 늘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렇게 정리된 방은 낯설기만 하다. 아이가 이 방을 그리워하지 않고 새로운 방에 빨리 익숙해지면 좋겠다. 아이의 새로운 출발 앞에 소심한 엄마의 마음을 숨기고 대범하고 힘차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넓은 세상으로 훨훨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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