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쇼트트랙에서 최민정 선수가 은메달을 따고, 남자 계주에서는 짜릿한 승리로 예선을 통과했다는 티브이 중계 소리에 조용한 저녁이 오랜만에 흥분의 기운으로 넘쳐났다. 스포츠의 짜릿한 승리감이 이렇게 삶에 에너지를 줄 수 있구나 감격해하던 순간에 큰 아이가 합격 발표 소식을 전했다. 무심코 들어간 대학 홈피에서 1차 충원 발표가 밤늦게 공지가 된 것이었다. 원래 토요일 오전에나 발표 예정이었던 공지였다.
예비 1번의 번호표를 손에 쥐고 있었던 우리는 합격이 될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 대학 마크가 찍힌 합격증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줄 몰랐다. '아마도 합격'이라는 기대와 실제로 합격증을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감각의 기쁨이었다. 큰 아이는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우린 예정에 없던 과장된 축하의 마음을 몸과 말로 표현했다. 작은 아이는 어느새 부엌에서 와인잔을 꺼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금요일 자정에 우린 와인 한 잔으로 축배를 들었다.
이 합격증 앞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 있었는지를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어떤 다이나믹한 파동의 모습으로 표현될까. 수능 시험 전부터 시험 직후 그리고 예상 점수와 합격 여부를 진단하는 상담까지 우린 감정의 파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삼수를 하지 않는 방안으로 안정선에서 지원을 했고 그 안정이라는 카드가 예비 1번밖에 되지 않는 결과에 우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어젯밤 우린 결국 합격증을 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즐기는 것 같던 아이가 이젠 마음이 좀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속으론 꽤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원하는 학교는 아니지만 아이는 이제 22학번 의대생이 된다. 지금까지의 노력과는 또 다른 고생길이 다시 열리겠지만 아이는 아직 해맑다. 가족을 떠나 혼자 독립하는 상황도 설레고 새로운 환경이 어떨지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축하전화를 받는 아이의 얼굴에서 설레는 개구쟁이 미소가 느껴진다.
얼마 전 읽은 TBWA 광고회사 대표 박웅현의 인터뷰 글이 떠오른다. 자신은 딸아이를 이기적인 마음을 키웠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자신의 선택으로 아이를 키웠고 행복했단다.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에 딸이 가장 재밌는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는 발상이 새롭다. 어떤 장난감도 그렇게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지는 못한다며 그런 순간을 지켜보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단다. 지금은 술 한잔을 함께 하며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바보 아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인품으로나 인문학적 소양으로나 얼마나 든든한 아이의 지지자가 되어주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 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건 아빠이기에 가능한 일일까. 내겐 아이를 키우면서 느긋하게 대견해했던 순간보다 애닳았던 기억이 유난히 많다. 그건 걱정이 많은 내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기본적인 마음은 노심초사였다. 아이와 함께 겪는 즐겁거나 슬프거나 그리고 좌절의 순간들에 아이의 지지대가 되어줘야 한다는 나의 책임감으로 긴장과 걱정이 가득했었다. 아이에겐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했지만 아이의 다양한 감정을 나는 고스란히 함께 겪고 있었다. 물론 그 마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남편이 아이가 크게 어긋남 없이 잘 자라주었다는 말을 덕담처럼 할 때 나는 왠지 억울한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 무난함으로 퉁쳐지는 성장에 내가 기억하는 애닳음, 안쓰러움, 걱정했던 마음 등은 어디에 녹아 있는 것일까.
행복한 아이를 보는 건 엄마로서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의 파도가 우리를 다시 흔들리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험난함 앞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는 보이지 않는 믿음만 세울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아이처럼 충분히 기뻐하며 즐기려고 한다. 그 정점의 순간이 바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