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조기교육

by 소록소록


"틀림없다니까. 그러다가 진부한 이야기가 되는 거지."

"와~ 아들! 너 쫌 고급 단어를 아는데?"

"뭐?"

"아니...'진부한'이라는 단어를 너무 적절하게 썼잖아!"

"나 그 뜻 잘 모르고 그냥 막 쓴 건데?"

"아니야, 바로 딱 적절하게 쓴 거야. 우와 대단한데? 이렇게 어휘 실력이 좋아졌는데 국어 내신 성적은 왜 그렇대?"

"아~ 모르고 쓴 말이라니까. 근데 그 '진부하다'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음... 구태의연한 거?"

"구태의연은 또 무슨 뜻인데?"

아이구 머리야. 이쯤 되면 아들의 국어 실력은 바닥을 자랑한다.

"음... 그러니까 아주 뻔하고 낡은 생각이다... 그런 거지..."

그제야 작은 아들을 좀 알 것 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중학생, 아니 초등생과의 대화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그런 대화가 우리 고등학생과의 대화이다. 우리는 '진부하다'라는 단어에 놀라는 부모이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외국에서 살다 왔냐고 묻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태어나서 줄곧 여기서 살았어요...."



작은 아이는 어릴 적 한창 유행하던 스펀지 밥이라는 만화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버릇없고 황당한 스펀지 밥이 꾀돌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이고 다니고 그보다 한참 모자란듯한 뚱뚱이 불가사리 패트릭이 갖은양념의 엉뚱한 행동을 하니 가가 막혀 웃는다. 상황이 웃긴 것은 이해하나 계속 보게 놔둬도 되나를 고민하는 엄마와 달리 아들은 온몸을 흔들며 웃어대고 좋아했다.



작은 아이는 자신의 영어실력의 공로를 스펀지 밥에게 돌렸다. '나의 모든 영어는 스펀지 밥에게서 다 배웠다.'고 말한다. 나도 부인할 수 없다. 작은 아이는 지금까지 영어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았지만 영어 책, 자막 없는 영화, 그리고 수능 영어까지 완벽하게 다 해낸다. 내신 역시 따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내신 일등급을 찍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우리 집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렇게 끝나면 조기 영어교육의 훈훈한 성공담이 될 수 있으나 아들의 국어 실력은 처참하다. 스펀지 밥이 영어는 알려주었지만 국어는 잊게 만든 힘이다. 국어는 그저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다 배우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국어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작은 아이는 국어가 어렵다. 고급 단어는 둘째치고 일상 언어에서도 이상한 단어 조합으로 표현해 우리의 배꼽을 잡게 한다. 아이의 국어 글짓기는 외국인이 어설프게 배워 쓴 한글 작문 같았다. 국어 성적은 물론... 형편없다.



조기교육의 무서운 현실이다.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지만 너무 쉽게 귀가 트이는 것에 혹하긴 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한국어를 못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각하게 고민할 땐 아이가 일반 한국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할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저 국어 실력이 부족한,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 것처럼 (물어보지 않으면 다행) 슬쩍 넘어간다. 대한민국의 자유 독립을 외치던 조상들께는 너무 송구한 일이나 국어가 어려운 아이로 조용히 대한민국 청소년으로 살아간다. 아주 쬐금 고급 단어가 아이 입에서 나오면 우린 물개 박수를 치고 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것이 조기 교육 실패 가정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쓴 편지를 봤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내 엄마는 좋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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