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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r 09. 2023

흔들리는 마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결혼한 지 22년이 되었다. 결혼 후 엄마는 내게 아쉬운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하곤 했다.

"으이구, 니를 좀 더 넉넉한 데로 시집을 보냈어야 하는데... "

무슨 조선시대 가난한 집 딸 팔아먹는 이야기도 아니고, 나는 엄마의 그 말이 듣기 싫어 귀를 닫았다. 그땐 맞벌이이기도 했고 미래의 희망적인 일들만 꿈꾸고 있었으니 엄마의 원색적인 말이 과한 욕심이려니 생각했다. 열심히 살면 당연한 보상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건실한 생각이 우리 부부의 마음이었다. 그 예상이 틀리다고 말할 순 없지만 또 정답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게 요즘의 내 심정이다. 물론 그동안 별 어려움 없이 먹고살며,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온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 일 년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들어오는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할 일은 자꾸 늘어나 달력에 빽빽하게 적힌 결제일이 무섭다고 했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생활비도 슬그머니 줄어들다 건너뛰기 시작했다. 모두가 힘들 때이니 곧 괜찮아지겠지 다독이며 그 시간들을 지내왔다. 그동안 아이 둘이 대학생이 되고 고정 지출은 더 늘어났다. 예전엔 현금으로 결제했던 굵직한 비용들을 이젠 카드로 결제하면서 매번 그 대금을 메꾸느라 고생하는 눈치였다. 뉴스에서 워낙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다들 이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귀를 쫑긋 열고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는 부동산 값이 떨어진 틈을 타서 더 넓고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골프 회원권 가격이 코로나 시국에 두 배로 뛰어 그걸 팔고 뭘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슬그머니 새어 나오는 여유로운 경제 상황에 마음이 턱 하고 걸리고 말았다. 코앞만 바라보던 내 생각이 미래로 뻗쳐나가자 더 큰 불안에 닿았다. 일을 그만둔 지 이십 년이 넘은 경단녀인데 지금에 와서 일을 구한다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구덩이를 만들어 나 자신을 자꾸 파묻고 있었다. 돈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나는 왜 돈에 무심한 척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후회의 감정이 보글보글 거품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다. 지금에 와서 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해서 돈이 내게로 다가와 줄 리는 만무하다. 마음은 심란해지고 머릿속엔 복잡한 숫자만 이리저리 꼬이기 시작했다.



 시기적절하게 최근에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여성 생계부양자 이야기라고 부제가 달린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책과, 숲 속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이란 부제가 달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이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는 엄마의 억척같은 생계부양의 인생을 딸의 입장에서 인터뷰한 글이다. 80년대, 노동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엄마의 영민한 노동의 서사는 마치 박정희 시대의 성공 자서전처럼 진행되는데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알뜰살뜰 재테크를 하며 살림을 불리는 스토리 뒷면엔 남편의 도박과 철없음이 모든 것을 거품으로 만드는 결말로 이어지니 흔한 드라마에 나오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모성이 동력이 되어 다시 요양 보호사라는 고된 노동으로 벌어 생활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돈의 위압감이 마음을 더 무겁게 누른다. 책의 내용이 여기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건 아니다. 작가는 소멸되는 엄마의 노동의 기억에 소중한 가치를 매겨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의 노동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제목이 책의 주제이다. 엄마의 삶을 기록하면서 모녀는 마음 깊숙이 숨겨둔 고통의 기억들을 조금씩 날려버리는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은 스웨덴 출신 숲 속 승려가 자신이 경험한 수행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 글이다. 20대에 이미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한 젊은이는 반짝 떠오른 마음속의 계시를 따라 태국의 숲 속 승려로 17년간 수행과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승려들이 출가하는 일반적 스토리이다. 17년이 지난 후 그는 명상 중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스웨덴으로 돌아오는 결정을 한다. 그 후 그가 겪은 고통의 이야기는 수행한 현자가 아닌 평범한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과 닮아 있어 마음이 솔깃해진다. 그가 마주한 사회는 탁발만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돈 한 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다. 심지어 탁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구걸이라 오해받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화려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며 일상을 유지하는 삶이 낯설면서 충격적으로 와닿아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다. 오랜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이가 이렇게 쉽게 삶이 흔들릴 수 있다니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가 쌓아온 수행의 시간들은 모두 헛것이란 말인가. 물론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고통과 함께 하는 일상의 삶에서 더 깊은 사유와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간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항상 가질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욕구를 채우려는 집착을 버릴 때마다 그 욕구가 더 쉽게 충족되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책이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노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했다면 두 번째 책은 성공과 수행을 함께 경험한 사람일지라도 세상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열심히 앞만 보며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는 개미처럼 살아야 할까, 욕심을 내려놓고 필요는 어떻게든 채워지리라는 믿음 깊은 수행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선택도 틀리다고 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오십 년의 삶을 살고 있는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내 인생 멘토인 조 여사와 함께 밥을 먹으며 괜스레 퉁퉁거려 봤다.

"엄마는 내가 결혼한다고 할 때 좀 말리지! 남들처럼 재력 빵빵한 남자한테 시집을 좀 보내주지 그랬어!"

눈꼬리가 순하게 내려앉은 엄마가 측은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돈도 다 소용없다! 그냥 먹고살만하고 자식들 건실하고 반듯하게 키우면 다 된 거다.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웃자고 던진 말인데 엄마의 답이 진지해진다. 그 대답이 엄마의 진심인지 힘 빠진 딸을 위로하려는 말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이십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괜히 눈두덩만 뜨듯해졌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진실된 답을 알게 될까. 오십의 철부지인 나는 매일 그 질문에 허둥대며 인생을 보낼까 봐 덜컥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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