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외로울 때 듣는 소리

by 소록소록

귀에 걸린 하얀 콩나물이 언제나 나는 신경이 쓰였다.

이어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음악이라면 스피커를 통해 웅장한 스테레오로 울려오는 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마저도 요란한 음은 내가 무얼 하던 방해음으로 들려 최소한의 잔잔한 음악을 배경 음악으로 켜 두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엔 그마저도 꺼두는 게 내겐 집중이 더 잘 되었다.



언젠가부터 아들 두 녀석은 귀에 콩나물을 걸고 다닌다. 콩나물의 리듬에 맞춰 흥얼거리기도 또 몸을 살며시 흔들기도 하며 흐뭇한 바보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들에게 콩나물이란 일상 그 자체였다. 공부할 때엔 콩나물 좀 빼주면 안 되겠냐는 간절한 나의 잔소리는 별로 먹히질 못했다. 수학 풀 땐 음악이지 하며 여전히 뭔가를 들으며 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나의 뇌구조와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했다.



그나마 식사시간엔 우리에게도 스피커를 통해 그들이 듣는 음악을 공개해 주었다. 다소 낯선 음악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아름답거나 신나는 음악이기에 슬쩍 곡 제목을 받아 적어두기도 하고 함께 흥얼거리기도 한다. 좋은 음악은 역시 함께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여행에서 줄창 들었던 아이유의 노래는 지금도 그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고 큰 아이는 말한다. 작은 아이는 에드 시런 곡을 들으면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 생각이 나서 그립다고 했다. 역시 감수성이 충만한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음악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겠구나 싶어 그 콩나물을 인정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제 큰 아이가 무심코 내게 물었다.

"엄마, 내가 요즘 공부하면서 많이 듣는 것이 뭔지 알아?"

"글쎄... 뭘 들으려나?... 뭐 에드 시런곡 아니면 폴 김 감성 충만 노래?"

큰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자신이 요즘 듣는 것은 백색소음이라고 말했다.



헉! 백색 소음이라니... 그건 그냥 창문 열어두면 들리는 아니 신경 안 쓰면 들리지 않는 그런 음이 아니었던가. 그걸 굳이 콩나물을 끼고 왜 듣는 걸까? 눈이 동그래져서 아들을 쳐다봤다. 처음엔 밤에 독서실에 혼자 있게 될 때 너무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음악을 듣기엔 좀 신경이 거슬리고 너무 조용한 것은 오히려 마음이 고독해져 잔잔한 물소리를 틀어두었더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단다. 오히려 소리에 집중하지 않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그 이후로 오전에도 오후에도 백색소음을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는데 아침엔 좀 힘찬 폭포 소리가 기분을 맑게 하고 오후엔 바다 산책을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이기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공부하면 공부가 잘된다고 말했다.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혼자 있을 때 나도 슬쩍 백색소음을 검색해 보았다. 이렇게 다양할 수가 없다.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장작 타는 소리까지 몸은 그러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 상황으로 퐁당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소리를 들으니 제주도 언덕 위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 들고,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니 고요한 밤에 캠프파이어 불 주위에서 손을 녹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창밖에는 오늘 줄곧 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라 그런지 빗소리는 들릴락 말락 하다. 내가 들은 백색소음 빗소리와는 다른 소리이다. 진짜는 이렇게 소리가 안 나는 것인가.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세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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