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괜찮은 사람

괜찮지 않음에 솔직하고 싶어.

by 소록소록

고질병이 시작되었다.

새벽에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끊임없이 몸을 뒤척여야 했다. 잠은 쏟아지고 통증은 날카로워져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급기야 엎드린 채 엉덩이는 하늘로 치켜두고 얼굴은 베개에 파묻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옆에서 남편이 괜찮은 거냐며 염려스럽게 물어본다. 대답할 기운도 없이 그저 괜찮다고 더 자라고 짧게 대답했다. 사실 괜찮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약을 하나 먹어야 할까 생각하며 얼굴을 들었더니 남편이 얼굴에 오만상을 찌푸린 채 날 보고 있어 화들짝 놀랐다. 남편은 정말 내가 걱정스러웠나 보다. 밤새 끙끙대더니 온몸에 힘을 가득 준 채 엉덩이를 치켜들고 요상한 포즈로 괴로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럴 법도 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남편은 최근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라 나 역시 신경이 많이 쓰이던 차였다. 그런 남편이 나를 보고 걱정 한가득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덜컥 더 무거워진다.

"아... 괜찮아... 오래 누워있어 허리 압력을 많이 받아서 그렇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져..."

하고 다시 가장 괜찮을 수 있는 자세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괜찮지가 않았다. 괜찮아야 하는데 괜찮지 않음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아 꾹꾹 참았다. 남편은 허리를 주물러 줄까 눌러줄까 하며 나를 살피는데 살짝 남편의 한숨이 느껴졌다. 순간 눈물이 차오른다. 참았던 눈물이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다행히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려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남편은 오늘 어디 어디 병원에 한 번 가보자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이미 난 내 감정이 극한 상태였다. 결국 남편에게 코 맹맹한 소리로 아침시간 동안만 아픈 통증이니 그렇게 무겁게 걱정하지 말라며 웅얼거렸다.


이럴 때 남편은 다행히 눈치가 빠른 편이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지키는 대신 일어나 어젯밤 준비해둔 아침 국을 덥히고 밥을 준비한다. 나는 조금 편안한 자세를 잡고 나의 예민한 반응을 곰곰이 생각했다. 남편은 당연히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내가 걱정스러워 마음이 무거웠던 거였다. 나는 내 통증이 남편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로 안겨주는 게 싫었다. 괜찮고 싶은데 괜찮지 않은 내 허리 상태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십여 년 전에 가슴에 멍울이 생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위험한 종양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몇 번의 조직검사를 받게 되어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던 시기였다. 아이들도 어릴 때여서 양육을 누구에겐가 맡기고 병원에 들어가는 일이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때도 아마 나의 마음은 괜찮지 않음이었을 텐데 나는 괜찮음을 위장했었다. 나를 걱정하는 남편과 부모님들, 언니, 오빠에게 내가 괜찮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걱정 가득한 얼굴에 나는 쿨해 보이는 표정으로 괜찮다고 뭐 일주일만 힘들면 되는 건데 뭐...라는 멘트를 호기롭게 날렸다.

내 감정보다는 그들의 걱정을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 아침 남편을 보면서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안 괜찮음보다 남편의 안 괜찮아질 마음이 내게 너무 크게 와 닿았었다. 오히려 남편이 나의 통증에 좀 더 대범하게 대해주었다면, 오히려 무심하게 생각했다면 나는 내 아픔을 더 엄살 피우며 너무 아파 기절하겠다며 시원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십 년 전 나의 부모 형제들이 그렇게 염려스러워하지 않고 잘 될 거라고 별 일 아닌 듯 가볍게 말했다면 사실 난 좀 겁이 난다고 솔직해질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자주 하는 말도 '응. 괜찮아...'이다.

진짜 괜찮은 건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은 채 "아임 올라잇!". 내 아이들도 그렇다. 자신의 힘든 점보단 그저 그럭저럭 괜찮다는 말을 더 자주 한다. 내가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길 바란다. 하지만 괜찮지 않을 상황은 여전히 많다. 새벽 허리 통증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고 남편의 바깥 일도 힘든 상황이 더 생길 수도 있다. 정말 내가 괜찮으려면 괜찮지 않음을 정직하고 시원하게 커밍아웃하는 게 괜찮음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괜찮지 않아도 우린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이며 힘이 되어줄 것이며 또다시 괜찮아질 가능성이 열려 있을 테니 말이다.


정말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음에 솔직해지기라도 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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