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찰나의 아름다움 때문에 늘 마음을 졸인다. 오늘 보지 못하면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그리움에 자꾸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봄이 어디쯤 가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니 이렇게 찰나인 것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커가는 아이들도 그렇고 늙어가는 부모님도, 그리고 나의 젊음도 그러하다. 그런 찰나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나는 어느새 열심히 다람쥐처럼 뛰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바로 딱 꽃놀이 가기 좋은 날이라고. 우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가장 게으른 길을 선택했다. 차가 오를 수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주차를 하고 맛보기 등산을 즐겼다. 산 위라 그런지 아직 벚꽃이 막 개화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진달래에 복숭아꽃까지 그야말로 꽃 대궐이다. 이렇게 산 위에서 바라보니 모든 일이 중요하지 않고 사소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은 중요한 일을 사소하게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 멀리 부산 시내가 다 보인다. 저기 광안대교, 북항 대교, 영도, 태종대 등등... 뭐든 조근조근 설명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아버지는 열심히 내게 부산을 안내해 주고 계신다. 딸의 외지 생활이 길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아버지가 딸을 기른 곳이 부산이었다는 것을 잊으신 건지 나는 부산 관광을 온 사람처럼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가 우리의 대화가 옆길로 샌 것은 저기 태종대가 보이는 곳의 해양대학교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말하는 라떼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버지의 시대는 믿기지 않지만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열 살 남짓에 전쟁을 겪었고, 너무도 못 살았던 대한민국이 있었고, 거기서 잘 살아보자고 구호를 죽어라 외치던 대통령과 부정부패와 그리고 번영의 파노라마가 다 있었다. 어느 한순간을 꼭 짚어 이야기할 때엔 나는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뿅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이야기에는 디테일의 묘사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고 지금 현재 아버지가 판단하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주제는 해양 대학교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립 해양대학교가 되겠다. 말 그대로 국립이기에 그 시절 돈 없는 가난한 모범생들이 가야 할 곳이 바로 그 해양대학교였다고 했다. 등록금과 숙식이 해결되고 졸업 후에는 배를 타는 선장이 되어 큰돈을 벌 수 있는 꿈을 꾸게 해주는 학교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주변엔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아버지가 오늘 내게 이야기해 준 해양대학교 출신의 지인은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었다.
"김병준이라는 친구가 있었지.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덩치가 아주 좋았어. 해군 사관학교랑 해양대학교 두군 데를 다 붙었는데 결국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해양대학교를 갔지. 그 당시에는 해양대학교에 들어가면 훈련도 너무 힘들고 선배들한테 많이 맞기도 하고 고생이 많은 때였어. 그걸 다 견디고 졸업을 했지. 원하던 대로 배를 탔어. 돈도 많이 벌었지. 내가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을 때였는데 걘 배를 타고 들어올 때마다 엄청난 뭉칫돈을 예금에 넣어달라고 가지고 오더라구.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는데 그게 또 한순간이더라고...
"조헌재라는 친구도 있었어. 그 친구도 역시 해양 대학교랑 해군 사관학교를 견주다가 그 친구는 해군 사관학교를 진학했지. 거기서 공부를 잘해서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어. 그 친구 품성에 딱 맞는 자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결혼을 하고 와이프가 불만이 많았던 거야. 그 시절 해사의 교수라는 게 월급이 쥐꼬리만했거든. 결국 교수 자리를 그만두고 나와 배를 타더라고. 그런데 그 일이 너무 그 녀석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거야.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배를 타고 돌아오면 또 가기 싫어 술을 마시고 그러더라고. 그 술이 점점 늘더니 결국 쉰이 넘어 간암에 걸리더라. 돈은 많이 벌었는데, 그럼 뭘 해... 몇 년 더 못 살고 죽었는걸..."
아버지는 해양대학교 하나를 두고서도 이렇게 이야기가 굴비처럼 이어져 나온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재밌어져 장단을 맞춘다.
'아이고 그 아저씨는 그냥 교수하고 있었으면 오래오래 살 수 있었을까?'
'그래도 김병준 아저씨는 재테크도 잘 했네 그 당시 땅을 사두었으면 거의 재벌이 되었겠는데?'
우린 갑자기 '그때 그랬더라면..'이란 말로 귀한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거의 이랬더라면에 대한 가정은 늘 수만 가지의 현재와 미래로 이어진다. 내가 이 남자와 만나지 않고 유학을 갔더라면 지금쯤 어땠을까. 내가 첫사랑과 결혼했더라면 지금쯤 후회했을까? 등등
아버지의 결론은 언제나 한 가지 길로 이른다. 인생에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살면 그 욕심이 눈을 가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삶이 가게 된다고. 그 길이 자신을 자신이 아닌 삶 속에 던져버리기에 행복하지 않은 거라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기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맞아... 아빠가 욕심 갖고서 부잣집 딸이랑 결혼한다고 막 그랬으면 나 같은 딸 못 봤지... 천만다행이지 뭐..."
이렇게 난 오늘도 능청을 떤다.
아버지의 '그때 그랬더라면...'의 과거는 감히 내가 상상할 수가 없다.
봄날 꽃의 찰나와 아버지 과거의 가정법은 너무 다른 이야기이지만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