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를 써드립니다

<츠바키 문구점>을 읽고...

by 소록소록


오랫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이 뜸했다.


웬만한 모임은 다 취소되었으며 가끔씩 만나 수다를 즐기던 이들과도 가끔 전화 통화만 할 뿐이다. 모두들 안녕히 잘 지내고 있는지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로 마음을 내려둔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하고도 계절이 바뀌는 지금, 예쁜 꽃 편지지에 봄소식의 시라도 한 편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시라면 멋진 배경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꾸며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으로 "깨똑" 하고 날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소재의 소설이 있다.




<츠바키 문구점>, 우리말로 옮기자면 동백꽃 문구점 정도가 되겠다. 문구점이란 단어도 잘 쓰지 않는 세상에 동백꽃 문구점이라니 할머니 시절의 동네 잡화점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도쿄에서 한 시간 거리의 가마쿠라라는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동네 문구점의 이야기이다. 문구를 파는 일 이외에 여기서는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을 해준다.



손 편지도 귀한 시절에 대필 편지라니 한 술 더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 포포는 자신의 할머니가 운영하던 문구점을 이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포프를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가르치며 엄격하게 키웠다. 한창 반항기 시절 포포는 할머니와 좋지 않은 관계로 헤어진다. 그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곳 할머니의 문구점에서 다시 할머니를 기억하며 할머니의 대필 일을 이어서 하게 된다.




포포는 고등학생 시절 할머니의 대필 일에 대해 이건 사기라고 거짓말투성이라고 대들었었다. 이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기라고 생각되면 사기라고 생각해. 하지만 편지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사람이 있어. 누군가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감사를 받는 일이야."


감사의 표시로 과자를 선물할 때에도 자신이 잘 만들 수 있다면 직접 과자를 만들어 선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과점에 가서 과자를 정성껏 골라서 선물할 것이라고 그렇다고 그게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표현해 주는 일을 대필 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대필 업이란 동네 과자점의 일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달변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눈을 보면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일은 오해로 번질 가능성이 있으며 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상대에게 이런 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포포는 제삼자가 되어 그 감정을 느끼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글로 옮긴다.




그녀의 의뢰인은 다양하다. 돈을 꿔달라는 지인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지, 옛 애인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기다리는 죽은 남편으로부터의 편지를 의뢰받는다. 의뢰인의 사연을 듣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알맞은 편지지를 정성껏 골라 편지를 쓴다. 포포가 편지를 쓰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은 경건한 예식 같기도 하다.




사랑을 표현하거나, 감사의 뜻을 표현하거나, 혹은 절교를 선언하거나, 거절의 뜻을 표시할 때 이렇게 정성이 가득한 손 편지로 상대의 의사를 느끼게 한다면 어떤 내용이든 진중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타인의 입장에서 대필을 하던 포포는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할머니와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의 표현을 편지로 쓴다. 엄하지만 사랑으로 키웠던 할머니의 마음과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고 헤어진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편지에 담는다. 그녀가 가졌던 마음의 숙제가 풀리는 기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포포가 자신의 일을 의미 있게 고민하며 정성을 다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가 대필해 준 편지가 의뢰인이 원하는 목적에 가깝게 성공했던 이유는 그녀의 이런 글쓰기의 태도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쉼 없이 빨리 흘러가버리는 지금 시대에 느리게 꾸욱 꾹 눌러쓴 편지가 주는 의미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천천히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1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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