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 점심밥 드세요

by 소록소록

"엄마, 이거 몸에 좋은 거야?"

큰 아이는 어릴 적 먹기 싫은 걸 먹을 때 꼭 이렇게 물었다. 웃음이 났다. 무슨 애 늙은이도 아니고 어린아이가 몸에 좋은 걸 궁금해하는 건 어디서 배웠을까. 물론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음식은 엄마도 몸에 좋으리라 기대하는 음식이었기에 흔쾌히 정말 몸이 튼튼해지는 음식이며 키도 이만큼 더 자라게 해 줄 거라고 과장된 답을 해 주었다. 아이는 군소리하지 않고 먹었다.


온라인 개학으로 방학에 이어 집밥을 먹이는 일이 5개월이 되어 간다. 학교에 보낼 땐 금방 배고파지는 급식이나 바깥 편의점 음식을 먹고 다니는 아이가 안쓰럽더니 집밥 5개월 차가 되니 영양사의 적절한 계획 아래 배급되는 급식이 아이의 영양을 더 채워주지 않을까로 생각이 선회되고 있다. 아이의 영양과 입맛과 지겨움 모두를 고려한 식단을 준비하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보람으로 퉁치기에 너무 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아침밥을 간단히 함께 하고 아들들은 컴퓨터 속 학교를 만나러 각자 자기의 자리를 잡았다. 나 역시 내 자리를 잡고 읽을 책과 노트북을 준비한다. 책은 한참 흥미롭게 진행되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군의 말도 안 되는 잔학 행위를 그리고 있는 대목이었다. 하루 종일 장대비 속에 노역을 하는 포로들에게 주어지는 건 하루 세 번 작은 주먹밥뿐이다. 그들의 사악한 노동에 비해 1분의 먹을거리 밖에 안 되는 음식을 들고 이것을 지금 먹어야 할지 몇 시간 후로 먹는 기쁨을 늘리며 노동의 괴로움을 버틸지 그들은 고민한다. 아! 처절한 인간의 고민이여...


그 순간 갑자기 세 시간 뒤에 닥쳐올 아이들의 점심시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포로들의 고민만큼 내 머리는 복잡해져 온다. 오늘은 또 어떤 메뉴로 아이들과 점심을 한 번 잘 먹어볼 것인가. 거기다가 내 수고로움의 강도도 조금 덜어 보고 싶다. 큰 아이가 수업 중인 거실을 통과해 살금살금 냉장고 문을 열어 스캔을 한다. 야채 확인! 냉동실 고기 확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솥에 남은 밥 확인!


오늘의 메뉴를 결정하게 된 것은 김치 냉장고에 숨겨둔 작은 아보카도 한 알이었다. 가스불을 켜지 않고 간단하지만 입맛을 돋우는 연어 아보카도 덮밥이 당첨이다. 조용조용 쌀을 씻어 밥을 준비하고 슬금슬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어제 집 앞 새로 생긴 생선 가게에서 신선한 연어를 봐 두었기 때문이다. 연어를 사러가는 길이 온통 푸르다. 목적을 잊고 하염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녹색이 더 짙어지기 전 지금의 연두 파릇함은 찰나라는 것을, 그래서 늙은이 같은 감탄을 숨길 수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안다. 새소리도 활기를 더한다.


양파를 얇게 저미듯 썰어서 찬물에서 매운 기를 뺀다. 아보카도도 깍둑 썰어 살짝 얼리고 연어도 저미듯 썰어 살짝 냉동실에서 기절시킨다. 양념장은 지난달 먹방 프로그램에서 눈여겨보고 만들어본 이정현 만능간장을 이용한다. 만능간장에 매실액과 다진 마늘, 레몬즙을 살짝 뿌려 달콤 쌉쌀 짭조름한 소스를 준비했다. 이젠 고슬고슬 따끈한 밥에 간단 준비해둔 재료들을 예쁘게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일본군의 포로만큼 고민했던 우리의 점심 고민이 끝났으니 이제 다시 포로의 주먹밥 고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책을 들고 자리를 잡는데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뜨인다.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의 등은 토실토실해지고 넓어졌다. 거기다가 힘은 엄마를 이미 능가한 지 오래다. 그런 아들은 이제 더 이상 몸에 좋은 음식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사심 가득한 말만 있을 뿐이다.

"이거 먹으면 피도 맑아진대. 칼슘이 많아 키가 좀 더 자랄지도 몰라..."

아이는 들은 척 만척할 때도, 그리고 슬슬 웃으며 엄마를 놀리기도 한다.

"엄마... 나 너무 충분히 몸이 건강하고 좋아. 이제 좀 덜 먹어도 될 듯요..."

아이는 현실을 살고 엄마는 과거에 존재한다.


얼마 전 편의점 앞에 걸린 광고 문구가 생각났다.

"지윤 씨, 아침 드세요~"

빈 속으로 지나가던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잠시 뭉클했었다. 누군가 나의 빈 속을 걱정하며 밥 먹으라고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가족들의 빈 속만 고민했던 내게 위로 같은 말이다.

누군가 "소록 씨, 아침밥 드세요~" 불러준다면 쪼르르 강아지처럼 따라갈 것 같다.

학창 시절 엄마의 "밥 먹어~"가 그리운 까닭이다.

내 아이는 오늘의 집밥을 한참 후에 어떻게 기억할까.

"아들들, 점심 드세요~"


아보카도 덮밥은 까다로운 아들들에게 별 네 개의 평가를 받았다. 이로써 취사병의 얼굴은 흐뭇해진다.

"얘들아. 근데 너희 이제 급식 먹고 싶어 지지 않니?"...

아들들 대답을 못하고 으흐흐 웃기만 한다.

취사병도 으흐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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