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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y 18. 2020

괜찮습니다, 내 몸입니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을 읽고...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9308


내 몸이 온전한 나의 몸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젊은 시절엔 여성으로 아름다운 몸이길 원했고 운동과 다이어트는 언제나 함께 했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누군가에 의해서 살을 좀 더 찌워야 한다던가, 몸이 넉넉해진걸 보니 마음이 편한가 보다 등등의 말을 듣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다. 나의 존재가, 나의 상태가, 보여지는 몸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은 실제로 피곤한 일이었다. 몸을 읽어주기보단 마음을 먼저 읽어주길 바랬다. 


 <말하는 몸>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팟캐스트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위안부 할머니가 한평생 마음속에 간직했던 자신의 몸에 대한 기억과, 장애인 여성이 연애를 하면서 겪는 몸에 대한 이야기, 타투이스트가 말하는 몸에 대한 생각, 미스코리아의 몸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몸 이야기 등등... 그녀들이 하고 싶은 몸에 대한 이야기는 흘러넘쳤다. 잊고 있었던 내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경험이었다. 몸은 그렇게 개인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함부로 타인에 의해 평가되거나 침해당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영역이었다.


<말하는 몸> 방송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된 책이 바로 록산 게이의 책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다. 190센티의 키에 261킬로그램의 몸무게까지 나갔었다는 저자 록산 게이가 쓴 몸에 대한 고백이다. 열두 살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좋아하던 남자 친구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단체 성폭행을 당함으로써 변화된 그녀의 몸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몸이 다른 이에 의해 파괴될 수 있으며 그 사건의 충격을 혼자 껴안아야 했던 여자아이의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피해자임에도 나의 억울함을 말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몸이 혐오스럽다.


내 몸이 남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도록 많이 먹고 뚱뚱해져서 자신을 그 속에 감추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계속 살찌우게 했다. 몸은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었고 또 자신을 바깥세상과 단절시켜버리는 감옥이 되기도 했다. 비만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아도 타인에게 비난받는 삶이었고 죄책감과 굴욕감을 갖게 하는 삶이었다. 그런 삶은 그녀를 더 고립되게 하고 가족과 친구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날씬하지 못한 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인가. 다이어트를 권장하는 광고는 날씬해지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주입시키고, 여성들은 쉽게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한다. 늘 몸무게와 허리둘레를 신경 쓰며 살아간다. 내 몸이 보는 이들에게 아름답기를 갈망하고, 보여지는 내가 아름다워야 나의 존재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얼마 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여성스럽다'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흘러나왔다. 여성스럽다는 말을 불편하다고 여기는 여성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 남자다운 것도 그럼 문제가 되냐고 항변하는 사람들... 사회가 만든 관념의 틀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지쳐간다. 그저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이해로는 살 수 없는 것일까.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이 추구되는 것 대신에 나다운 건강함이 존재하기를, 남의 평가로 설명되는 내가 아닌 나의 존재, 생각과 행위로 대우받는 것이 과한 요구가 아닌 당연함으로 인식되었으면 한다. 나의 존재가 '예쁘다'라거나, '정상인의 몸매에 가깝다'라고 표현되거나 평가되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다. 저자 록산 게이는 생생하게 기록한다. 비만의 몸으로 살아간 그녀의 삶이 스스로를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폭력속에 있었는지... 나 역시 그 시선에 발을 맞추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인정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내 옷의 사이즈나 외모에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믿고 싶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 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 헝거 p. 36


영화 <아워 바디>에서는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을 알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공무원 수험생으로 고시원에서 공부만 하면서 점점 지쳐가던 이십 대의 자영이는 우연히 건강하게 달리는 여자 현주를 보게 된다. 그녀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하는 자영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심장의 박동, 몸의 감각들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새롭게 느끼는 이야기이다. 내 몸이 스스로에게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 그래서 더 나다움을 느끼게 되는 그 설정이 매력적이다. 몸은 그래야 한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9095


우리의 마음이 몸과 함께 편안하길 바란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자신에 의해 깨어나는 몸, 그래서 더 건강하고 충만하게 살아나가는 몸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여성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나의 강박에 깊숙이 숨겨둔 나의 상처는 없는지 내 몸과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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