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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un 20. 2020

무엇이든 가능하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힘에 대하여

글쓰기가 아득해질 때가 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고, 위대한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자신의 영혼을 다시 읽어봐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구절을 책에서 읽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거기에다가 '아, 좋다!'라는 감정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면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의지보단 작가에 대한 경탄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얼마나 많은 글과 사고가 모여 이런 글이 되었을까... 이런 글을 나는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책 제목 '무엇이든 가능하다. anything is possible'는 심심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무책임하기도 또 무심하기도 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읽다 보면 제목이 주는 의미를 골똘하게 깊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에 언제든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직이 들려준다. 흔하고 사소할 수 있는 사건에서도 독자로 하여금 좀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흉내 낼 수 없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이해는 읽는 내내 가슴 어느 부분을 쿡쿡 찔러댔다.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냐고. 그리고 그런 일이 내게도, 네게도 가능하다고... 그 메시지가 이야기의 인물에 내 마음을 조용히 동화시키게 만든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범주는 어느 정도일까.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에,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기에 광범위하게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어쩌면 그리 넓지 않은 범주 속에서 인간은 비슷하지만 복잡한 조합의 사건과 대응으로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일 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이다.


이야기는 미국 일리노이주 앰개시라는 작고 빛바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겪는 아홉 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기도 하고 서로 바라보기도 하며 전개된다. 인물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첫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노인 토미는 젊은 시절 넓은 농장의 주인이었지만 하룻밤의 화재로 모든 것을 잃는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불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그날 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아내와 자식들뿐임을, 그래서 그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일도 자신에겐 괜찮은 일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처럼 듣게 된다. 그는 이 사실을 소중한 비밀로 평생 간직한다.


모든 재산을 잃고, 물론 가장 중요한 가족을 잃지 않은 채, 그는 학교의 수위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날의 깨우침을 잊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더 불우한 이웃들을 돌보고 관심을 갖는다. 그는 피터라는 자신의 옛 농장에서 일하던 일꾼의 아들을 만난다. 정기적으로 만나 그의 안부를 물으며 지냈는데 피터는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농장을 불태운 범인임을 알고 그를 압박하기 위해 찾아오는 거라 오해를 하고 있다. 토미는 피터에게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다가 그가 간직한 그날의 비밀을 말하게 된다. 그가 평생 믿어온 하나님의 계시를... 피터는 의심에 찬 눈으로 정말 그 사실을 믿냐는 말에 토미는 혼란에 빠진다. 그의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는 순간 그 의심은 다시 그의 남은 일생의 비밀이 될 것임을 감지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믿음의 대상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보다 그 믿음을 지켜 나가려는 우리의 태도가 더 값진 게 아닐까. 인생에 진실이란 게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그 진실에 가깝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의 계시가 진실이든 아니든 토미가 평생 살아온 삶의 태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에는 그 시대에서 좀 더 무감각하게 일어났던 갖가지 가정 폭력과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리적인 폭력은 몸에 상처를 내고 언어적인 폭력 역시 가슴에 생채기를 남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문제이든지 아니면 전쟁으로 인한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폭력이었던지 이 모든 폭력은 사람들의 마음에 끈질기게 살아남아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로 점점 더 넓게 다양한 모습으로 퍼져간다.


아동기의 불우한 기억이, 끔찍한 사건들은 각자 성공을 위한 동력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운명에 던져버리는 무기력 한 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족과 학교에 대한 불행의 기억을 떨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루시 바턴은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그 불행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아 있다. 어릴 적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찾아 뒤지며 살아온 에이블 블레인은 성공한 기업가로 행복하고 유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게 되지만 그가 마지막에 맞닥뜨린 의외의 인물에 의해 자신에게 숨겨진 은밀한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개인의 힘으로 방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불행에 대해 인간은  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그 아픔을 평생 짐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작가는 이런 고통이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으로도 지워질 수 없으며 외면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계급의 사람들이 이들을 자신이 가진 것으로 누르거나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이들은 더더욱 형편없는 쓰레기가 된다는 말로 표현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계급과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첫 이야기에 등장하는 토미는 이렇게 말한다.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인간이게 해 주지."

인간은 그런 게 아닐까.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 불행에서도 우리를 지키게 하는 힘을 찾는 것, 그리고 내가 다른 이에게 가한 고통에 대해 미안함을 갖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은 불우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다행히도 책을 읽는 동안 그 불행에 마음이 잠식당하지 않았다. 작가가 말한 불행은 어디서든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며, 그 불행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와 이웃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함께 느끼고 손을 내미는 그 무엇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불행이 만연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의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고찰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이었다. 좋은 책은 역시 다시 읽게 하고 내 영혼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갖게 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무거운 제목이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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