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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ul 05. 2020

특별하지만 보편적인 삶에 대하여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책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존재하는지, 각자 얼마나 다른 생각과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흔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책으로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에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보편적인 존재이며 다양한 생각 속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의 범위가 아주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면서 또 일반적인 존재이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인간의 내면을 매우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기술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책 '무엇이든 가능하다'에 이어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역시 등장인물의 내면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무엇이든 가능하다'의 등장인물인 루시 바턴이 1인칭 화자로 기술하는 그녀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분리되어 있지만 또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뉴욕에서 소설을 발간하며 작가로서 관심을 받게 된 루시 바턴에게는 침울한 유년의 기억이 존재한다. 그녀의 일상에서 기억이란 그저 무심코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마음에 갑자기 어둠으로 몰려드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그때의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불쑥 그녀의 삶에 끼어든 기억의 조각들은 그녀의 삶을 공포스럽게도 만들었다가 또 아닌 척 의연한 척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그녀는 맹장수술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알 수 없는 감염의 증세로 9주라는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그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가 선물처럼 찾아오면서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그녀는 차고에서 생활하던 어린 시절의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친구들의 불편한 시선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 가족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고통을 서로 나누지 못하고 각자 견뎌야 했던 시간들은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나누기 힘든 관계가 된다. 


자신들의 고통에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일들을 하게 되고 또 서로의 고통에 눈 감았던 일들이 있었다. 어린 루시 바턴이 가졌던 그 당시의 불운한 기억과 아픔들이 현재 어머니와 함께 기억을 더듬으며 좀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사건으로 되살아난다. 하나의 사건에도 형제들과 이웃들이 느꼈을 감정이 얼마나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들이 현재의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루시 바턴은 지긋지긋했던 앰개시 마을을 도망치듯 뛰어나와 그녀가 염원하던 뉴욕에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과 작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릴 적 기억과 감정이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그녀의 입과 몸을 통해 비집고 나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기억들은 현재의 그녀의 결혼 생활에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스며들어 있다. 


그녀가 어른이 되어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엄마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길 바라며 읽게 되지만 이런 결말은 쉽지가 않다. 엄마에게도 그녀에게도 극복하기 힘든 과거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 불편한 관계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원망하는 자세도 아니다. 그저 그런 일이 우리에게 있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 위에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스스로의 숙제로 간직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일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루시 바턴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녀가 느끼는 과거의 아픔과 그 기억으로 바라보는 현재와 그녀의 미래의 삶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린다. 우리의 기억은 완전하지도 않으며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는 늘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루시 바턴을 느끼고 공감하듯이 우리는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인 공감의 힘으로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 속에 성장하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서둘러 그녀의 다른 책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는 또 어떤 시선으로 누군가의 내면을 그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녀의 글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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