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록소록 Jul 28. 2020

응원과 존경의 우정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읽고


박경리의 고향 통영에 가면 <봄날의 책방>이란 작은 책방이 있다.

오밀조밀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처럼 흐르는 바다도 보이고 그림 같은 작은 다리를 건너고 또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통영중학교, 통영고등학교도 만난다. 멀리 이정표를 보니 용화사라는 절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그 어디 즈음 작고 조용한 마을에 <봄날의 책방>이 다소곳이 숨겨져 있다.



바깥에서 보면 헨젤과 그레텔의 숲 속 집 같은 모양새다. 흰 벽에는 백석 시인과 박경리 작가의 초상화 그림과 글이 오는 이를 반긴다. 화려할 것이 하나 없는 작은 도시에 문인들의 작은 글귀들이 이 도시의 자부심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 같다. 봄날의 책방은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책방이라고 한다.


아기자기한 작은방에 몇 가지 컨셉으로 꾸며둔 책방은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통영의 대표 작가들의 방이 있는가 하면 동화책의 방이 있고 또 예술 관련의 방도 보인다. 작은 책방을 방문하는 즐거움은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책의 큐레이팅에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방 구경을 하다가 <친애하는 미스터 최>라는 책을 발견했다.



<100만 번을 산 고양이>의 그림책 작가로도, 에세이스트로도 알려진 사노 요코의 서간문 책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한국의 미스터 최(최정호 님)와 돈독한 관계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에세이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그녀가 존경한다고 늘 말하던 그 미스터 최에게 그녀는 어떤 편지를 평생 보내었던 걸까. 그녀가 자주 노골적으로 표현했던 미스터 최에 대한 애정이 그녀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잘 표현되어 있으리라 예상했다.


우연히 사노 요코와 미스터 최는 베를린 유학시절 인연을 맺게된다. 미스터 최의 노골적인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사노 요코 씨는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느낀 것 같다. 그녀는 미스터 최의 지성, 애국심, 그의 성실하고 열정적인 태도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며 40년간 편지 친구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들이 나눈 편지에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부터 각자 서로를 응원하는 진심의 마음이 녹여져 있다. 두터운 신뢰가 없이는 이렇게 서로의 삶을 평생 응원하고 존경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친애하는 최와의 우정을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겠다는 사노 요코의 고백이 따뜻하다.



사노 요코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는 속내를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속 시원하게 말할 때 그녀의 발랄하고 개구쟁이 같은 그녀만의 매력이 넘친다. 솔직한  작가의 감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이 아님 통쾌함을 주는 효과를 가진다.


"훗날 할머니가 되는 것도 즐겁게 기다리고 있어요. 노망 든 체해서 심술부리고 미움을 받는 것도 재미있지요."

그녀의 유년시절의 삶이 결코 가볍진 않았음에도 그녀의 글은 가볍게 힘을 빼고 살아가는 여유가 느껴진다. 인연에도, 나이 듦에 대해서도 그녀는 초탈한 듯 유쾌한 생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존경하는 친구라고 지칭한 미스터 최에게 아들을 낳고 난 후의 심정에 대해 쓴 편지가 인상적이다. 아이를 낳기 전 모성본능에 대해 믿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아이에게 빠진 맹목적인 사랑을 말하는 대목은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아이가 너무 예쁜 나머지 할짝할짝 핥아서 키워 침투성이 아기가 되었다는 대목은 얼마나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솔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아마도 아이와 남편이 함께 강에 빠지면 모든 엄마들은 아들을 먼저 구출할 것이며 남편은 그의 어머니가 구해줄 때까지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유머를 쏟아낸다. 누가 이런 글을 읽고 그녀를 사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난은 부끄럽지가 않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는 그녀의 글은 그녀가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 그녀의 품성이 보인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체득했기에 그녀는 친애하는 미스터 최라는 인연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이어가며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좋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매끄럽고 화려한 글 솜씨가 아니라 삶을 관조하고 꿰뚫어 보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가 겪었던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간 그녀의 삶이 작품으로 그대로 보인다.


사노 요코는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며 친애하는 미스터 최와의 편지 우정과 그녀의 노년의 삶을 유쾌하게 유지했었다고 한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삶을 경쾌하게 힘을 빼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친애하는 미스터 최처럼 지적이고 유능하며 심미안을 가진 편지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친애하는 미스터 최와 유쾌한 사노 요코의 우정을 시기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글을 나누는 사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거진의 이전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