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에게 받는 공감과 위안
"쇼코의 미소"를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단편집을 들었는데 이렇게 묵직하게 나를 빨아들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장편소설에 몰입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에 작은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최은영 작가의 책을 골랐는데 장편 소설 못지않게 스토리마다 한 명 한 명의 인물에 빠져 들게 된다. 각 인물들이 겪어 내는 관계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처럼 마음에 파고들었다. 도대체 최은영이라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인다.
대표작 쇼코의 미소는 여고생 시절 자매학교의 방문으로 만나게 된 일본인 쇼코와 한국인 소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비슷한 듯 다르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세 번을 만나게 된다. 여고생 시절의 첫 만남 이후 서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소유가 대학생이 되어 쇼코를 찾아 일본을 방문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할아버지를 잃고 쇼코는 다시 소유를 찾아온다. 그 긴 기간 동안 그들에겐 각자의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삶의 경험을 갖게 되고 또 성장한다. 그들에게 가족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서로가 기대했던 것과 그리워했던 관계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또 다른 이야기, <한주와 영주>는 가장 몰입해서 읽은 이야기이다. 대학원의 생활을 벗어나 프랑스의 작은 수도원에서 봉사생활을 시작하게 된 영주는 먼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온 한주라는 수의사를 만나게 된다. 키가 매우 크고 반짝이는 검은 피부를 가진 한주와 작고 수줍은 영주는 어디 하나 공통점이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서서히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그들은 봉사시간이 끝난 후 낯선 그곳에서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각자 다른 언어,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경험, 다른 모습, 그리고 성격 역시 다르지만 그들의 말과 눈빛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인간이 서로 신뢰하는 데에는 구차한 다른 요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상상하며 몰입했다.
지속할 수 없는 시간들의 만남 속에 그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서로 등을 돌린다. 소설에서는 표면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끝나지만 그들의 갈등은 본질적인 미움의 갈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서로에게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소설의 결말과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글이었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가 소재가 된 <미카엘라>, <비밀>, 그리고 <먼 곳에서 온 노래>등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느 하나 실망스러운 작품이 없다. 크고 화려한 사건은 없으며 너무나도 일상적인 우리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엔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따뜻하고 날카롭게 기록된다. 때론 그 관계가 상처가 되고 회복이 불능일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그 바탕엔 믿음과 사랑이 있음을 작가는 차분하고 조급하지 않게 이야기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내 마음이 서서히 작가의 마음에 길들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작가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렸었다. 일상적인 이야기에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고, 따뜻함 속에 날카로운 지적이 통쾌하게 느껴지는 선생님의 글이 좋았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여기 최은영 작가는 그런 글을 닮아 있다. 그녀의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과 사람에 대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올해의 소설에 나는 당연히 최은영 작가의 이야기를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