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듣는 가장 두려운 말 중에 하나가 "너를 믿는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너를 믿는다'라는 말은 말 그대로 초긍정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말이 되기까지에는 은밀하고 복잡한 감정의 뉘앙스와 관계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믿는 것 같지만 믿지 못하는, 믿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의심의 기운이 슬슬 피어오르고, 결국 믿는다는 말로 올가미를 만드는 일. 그래서 믿음의 실체는 언제나 모호하지만 우리의 직관은 이미 불신을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믿는다는 그 느낌을 짐작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신뢰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말하지 못하기에, 눈빛만으로 주고 받게 되는 본질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사람의 말이 구차해지는 순간이다. 눈빛으로 믿는다고 교감했다면 말은 더이상 필요한 도구가 아닌게다. 그러니 동물세계에서는 배신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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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리의 반려 고양이 달이를 집에 데리고 온 날 그 작은 동물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작고 여린 몸을 어느 구석에 숨겨야 눈에 띄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소파 밑이나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가구 틈새를 용케 찾아내 기어들어갔다. 우린 잠시 그 연약한 존재를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우리가 잠든 후 달이는 몰래 밖으로 나와 물과 사료를 먹고 다시 구석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주 천천히 우리 집안의 냄새에 그리고 가족들의 안정적인 움직임에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달이와 가족이 된 지 삼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달이는 나의 쿵쾅거리는 발걸음에도 엎드려 태평스레 잠을 자고 있다. 우리가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귀에 쫑긋거리는 여유를 보여준다.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을 알고 밤늦게 들어오지 않는 가족의 방앞에 누워 기다리는 성의도 보인다. 무심한 척 우리를 돌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일까.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은 어느새 신뢰를 담은 사랑의 눈빛으로 변했다. 우리에겐 이런 신뢰의 시간이 필요했다. 쉽게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시간과 경험을 통해 서로 믿게 되는 관계. 어쩌면 당연한 과정인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가족과 달이의 눈빛 교환은 말 그대로 사랑과 믿음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신뢰가 쌓이는 것은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어쩌면 더 짧은 시간에 말과 행동으로 급속히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너를 믿어’ ‘너는 네게 참 소중한 존재야.’
듣기에도 달콤한 이 말은 사람에게서 위안을 느끼게 한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그 신뢰의 말속에 우린 살아갈 만한 세상을 느끼며 자랐다. 어느 순간 우리에겐 그 말의 진의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진심이라 믿은 그 말은 내뱉은 순간부터 얼만큼의 시간 동안 유효한 것일까. 때로는 그 말들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더라도 다소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눈감기로 한 것은 아닐까.
말은 서로에게 믿음을 요구하거나 받아들이는 효과적이고 빠른 수단이 되긴 했지만 달이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말에 의해 그 진의를 다시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 말이다.
티브이에서 요식업에 성공을 거둔 백종원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쉽게 말을 내뱉는 성격인데 자신 인생의 대부분을 그 말에 대한 책임지는 뒷감당으로 보낸 것 같다고. 최소한 그에겐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끈 하나의 열쇠가 되었음을 나는 짐작한다.
믿음은 말이 아닌 시간과 경험으로 쌓이는 것임을, 그리고 일단 말을 해버렸다면 최소한 그 말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기를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이 작고 연약한 동물에게서 믿음을 배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이처럼 작지만 일관된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니 그동안 말로 남발한 내 언행이 부끄러워진다. 믿는다는 말 대신에 신뢰의 눈빛과 행동을 보이는 일. 그 일이 익숙해지는 사람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