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완벽한 계획일세
"언니는 60대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
P가 말했다. 순간 멍했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P의 속내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는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두 번은 혼자 고심했을 것이고 질문을 뱉은 후에는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 자궁 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사십 중반의 나이이면 여성으로서의 삶이 정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창인 나이였다. 아이들도 아직 손과 마음이 많이 가야 하는 때라 늘 분주하기도 했지만 그런 삶을 지혜롭게 잘해 내는 P였다. 그런 그녀에게 암 소식은 누군가 옥상 위에서 장난으로 던진 작은 돌멩이를 툭 하고 재수 없이 맞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알게 되어 신속하게 정밀 검사와 수술 날짜가 잡혔다. 건강하고 젊으니 예정대로 수술을 받고 회복을 잘한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았다. 다행이라는 나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무거워 보였다.
나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혼한 여성이 아프다는 것은 내가 투병을 하는 아픔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심란한 일들을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일인지 해 본 사람은 안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내 병을 알리는 일,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상처 없이 힘든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 그리고 나의 부재로 인해 집안이 혼란스러워질 일 등등을 생각한다면 내가 아프다는 것에 망연자실할 여유조차 없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내 경험을 비추어 주변의 것들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고 조언했었다. 아픈 내 몸에 더 집중하고 잘 돌보아주라고. 나를 사랑하는 주변인들을 걱정하거나 그들을 배려하는 것은 잠시 놓아버려도 된다고. 그들도 그들의 힘듦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게 될 거라고. 그 짐까지 모두 끌어안고 수술방에 들어가지는 말자고 말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나는, 말하면서도 그게 P에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스럽기는 했다.
그런 그녀가 대뜸 60대 이후의 삶을 물어보니 내 경험에 비추어 안일하게 조언한 내가 돌멩이를 맞은 기분이 되었다. P는 더 깊고 골똘히 투병의 시간과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전에 30대 이후에는 어떤 즐거움을 살아갈지 궁금했었어. 이십 대의 호기심과 흥분 같은 건 없을 테고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까를 생각했는데, 막상 삼십 대가 되니 하루하루 눈 앞에 펼쳐진 일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홀라당 가버리더라고. 아... 이렇게 삼십 대의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은 병을 이겨낸 후 육십 대가 지나고 나면 어떻게 삶이 흘러가게 될까 생각하게 되네..."
잠시 둘 다 말을 멈추고 우리의 육십 대를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가면서 이제 부모 곁을 곧 떠나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늘 품고 있었다. 부모로서의 영향력이 점점 더 약해지고 이제 아이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질 때도 있었다. 라떼를 떠올리는 부모보다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옳을 거라고 믿는 편이 나았다. 그러니 나의 육십 대는 아이들로부터는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좀 더 내 삶에 집중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 눈치, 부모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있었다.
나의 순진한 희망을 P는 어떻게 생각할까 잠시 망설여졌다.
"너무 먼 미래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이십 대에 생각한 삼십 대가 이렇게 흘러가듯이 우리의 육십 대엔 또 다른 즐거운 삶이 있을 거야. 배포가 더 커져서 더 신나게 즐기고 자식들 나 몰라라 해도 되고 말이지!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겠지? 우리 한 번 잘 놀아 보자고 육십 대에도! 걱정하지 마. 너무 재미있어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올 테니!"
나는 과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온 그녀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얹어진 그 마음에 그까짓것으로 훅 날려 버리는 마음이 되길 바랐다. 겨울을 위해 참고 일하는 개미보다 지금 노래를 부르는 베짱이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칠순이 넘어 한글을 배우고 열일곱 소녀의 정서로 깔깔거리며 살아가는 시골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있지 않았던가. 우리의 삶은 그렇게 비장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계획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그랬다.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무계획은 틀어질 일이 전혀 없다고. 그저 지금이 그리고 바로 앞의 일들에 소중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와 진한 라떼 한 잔을 마시고 헤어지며 P에게 속삭인다. 우리 베짱이로 살자고. 인생 뭐 있겠냐고. 말해 놓고 보니 갑자기 용기와 자신감이 마구 솟아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P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