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빠의 철부지이고 싶다

늙어가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by 소록소록

띠리링...

아침 댓바람부터 친정집에 전화를 했다. 어젯밤 엄마가 은행을 잘못 만졌다가 얼굴에 붉은 반점이 올랐다고 했었다. 가려움증은 덜해졌는지 안부차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전화를 받으신다.

아빠의 목소리가 기분 좋은 억양으로 수화기로 흘러넘쳤다.

"아침밥 먹었나? 엄마가 나물이랑 생선이랑 맛있게 해서 먹고 있는데 먹으러 온나..."

"아니요 애들이랑 빵이랑 해서 아침 간단히 먹었어."

"그래도 먹으러 와. 빵이 빵이지 어디 밥이가?"

다 큰 청소년 둘을 키우는, 중년의 정중앙에 있는 나는 아빠에겐 여전히 철부지 딸이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딸에게 챙김을 받는 게 아니라 딸을 챙기려고 든다. 그런 아빠에게 나 역시 혀 짧은 소리로 대응한다.

"아이... 아빠 빵이 칼로리로는 밥을 넘어서... 배 뚱뚱하게 먹었으니 걱정 마..."

함께 맛있는 반찬을 먹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 명치 저 아래부터 뜨듯한 김이 불쑥 올라오는 것 같다.


얼마 전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은근히 남편 험담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초긍정주의 사고가 좋아 결혼을 하긴 했지만 현실에선 도움이 안 될 때가 있었다. '잘 될 거야 걱정 마...'의 레퍼토리가 예전에는 그렇게 든든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무심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인드의 소유자는 현실 세계에서 동동거리는 이를 참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게 했다. 나도 그를 닮고 싶지만 이것은 태생적인 문제이기에 이러고 살아온 내 삶이 너무 길고 익숙했다. 그의 안일함은 내 잔걱정을 과하게 느껴지게 했고 나의 걱정병은 그를 더더욱 무심하게 보이게 했다.


"엄마... 조서방은 진짜 걱정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걱정을 방어하려고 그런 척하는 걸까..."

로 시작한 험담은 엄마의 남편 험담으로 이어졌다. 요약하면 젊은 시절 아빠도 그랬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다정하기만 한 아빠의 모습이 젊을 적엔 자식의 교육이나 집안의 대소사에 크게 관심을 주지 않는 가장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때 아빠보다는 엄마와 상의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그저 그 결정을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의사를 표명해 왔던 것 같다.


남자들은 중년이 넘어가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좀 더 가정적이고 여성스러운 마음이 된다더니,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찔끔거리는 것도 중년 이후의 남자라더니 아빠도 그런 변화를 이미 겪은 것일까. 한국 전쟁 시절 시체가 널려 있는 산을 혼자 넘어 학교에 갔다는 아버지의 무용담과 현재의 나긋하고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역시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본성이 따뜻한 아버지가 고단한 삶에서 버텨내야 할 일과 책임이 너무 무거워 젊은 시절은 그 다정함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딸을 바라보는 팔순이 넘은 아버지의 시선은 사랑이 넘친다. 젊은 시절 막내딸에게 해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지금 다 표현하시려는 것 같다. 맛있는 아침밥을 함께 먹고 싶고, 자식 걱정하는 딸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 하고 싶어 하신다. 엄마의 맛있는 반찬을 혼자 드시기 아까워 딸 집으로 반찬 배달해 주는 것도 아버지의 몫이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차곡차곡 마음에 쌓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빠에게 초등학생 막내딸처럼 손편지를 적었다. ' 아빠가 옆에 건강하게 있어주니 막내딸이 너무너무 좋아. 아프지 말고 계속 내 좋은 아빠가 되어주세요.'

이 편지를 읽고서 바보 미소를 지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니 기쁘고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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