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혼 전인 친구 소정이는 내게 그랬다.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반쪽을 알아보는 텔레파시의 힘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선을 봐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이 사람 같으니 이렇게 해서는 죽을 때까지 반쪽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고. 치열하게 반쪽을 찾기에는 자신의 열정은 이제 불꽃이 거의 꺼져 간다고 했다.
가만히 듣다 보니 나의 이십 대 시절이 떠올랐다. 몇 번의 연애가 수포로 돌아가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갈 때가 있었다. 찰떡같이 잘 맞는 누군가가 있어 함께 교감하고 행복을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반쪽을 찾는 일은 요원해 보였고 그 에너지보단 내 일상생활에 쏟아부을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이 더 많았다. 하루살이처럼 그날의 에너지를 나의 일상에 소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솔로의 직장생활이 변화 불가능한 나의 일상이라 여겨졌다. 익숙해지니 그리 불편할 것도 애타게 반쪽을 찾아야겠다는 의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쯤 생각하다 보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결혼 당시 남편이 나의 완전한 반쪽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함께 할 시간을 노력하는 자세로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희망을 부여잡고 시작했다.(결혼이란 아주 사소한 한 가지 믿음으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연애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고 관계에 대한 불순한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희망을 유지하기엔 서로를 맞추어 나가는 일은 오랜기간 꾸준한 노오력이 아주 끊임없이 필요한 일이었다. 순간순간 이 모든 걸 알았다면 덥석 결혼에 뛰어들었을까 하는 마음도 사실 있었다. 무지가 용감을 가져다 주었다.
반쪽에 대한 생각이 새삼스럽게 내 마음에 다시 들어온 것은 넷플릭스 성장 영화 <반쪽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하이틴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상대가 너무 아름답기에 그녀를 위한 사랑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해서 사랑을 얻고자 하는 순수 열정파 폴이 있다. 그런 폴은 자신의 사랑 에스터에게 쓸 편지를 대필할 친구로 중국계 모범생 친구 엘리를 꼽는다. 돈을 벌기 위해 대리 숙제를 해주던 엘리는 사랑에는 냉소적인 태도이지만 뭔지 모를 끌림에 폴 대신 에스더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오직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던 외로운 엘리에게 에스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비록 자신의 이름으로 쓴 편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관계의 맛에 빠져든다.
"드디어 나를 이해해주는 또래 친구를 만난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현실에서는 친구가 아니지만 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좋아하는 책에 대해, 그리고 고민에 대해 에스터와 서로 교감하는 대목은 외로웠던 엘리가 성장해 나가는 새로운 계기가 된다.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를 경험한다.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폴 대신 엘리가 대필한 편지라는 것을 에스더가 알게 되고 폴은 엘리와 함께 그의 사랑을 꿈꾸다가 엘리의 또 다른 모습에 빠져들게 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혼돈으로 빠져든다. 무엇이 사랑의 감정이고,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일까.
한눈에 반한 여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노력하는 폴의 마음도 사랑이고, 비록 타인의 이름으로 적은 편지이지만 에스터의 감정을 읽고 교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며 얻은 진심의 소통도 사랑의 감정이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아주 서서히 엘리를 알아가면서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키워지는 감정도 사랑이다.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엘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겪은 사랑은 이런 느낌이었나 보다. 처음 겪는 사랑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충만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할 만한 것이라고 느낀다면 좋겠다.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위해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것이라고. 손을 내밀고 실패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엘리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결혼 전 서로의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노력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나의 마음도 사랑이었구나 비로소 알게 된다. 나의 완전한 반쪽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상대에 대한 사랑에 내가 노력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사랑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소중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열정이 식어간다는 것은 그런 사랑을 위한 자신의 태도가 점점 힘을 잃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청소년들의 좌충우돌 사랑에 대한 성장 이야기로 본 영화가 뜻하지 않게 내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실마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실마리를 어떻게 두고 풀어갈 것인지, 그 실마리를 잘 가꿀 수 있는 태도를 나는 갖고 있는지 돌아봐야 제대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처음부터 완벽한 사랑은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보다 마지막까지의 사랑을 꿈꾸는 나는 여전히 사랑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한다.
불꽃을 다한 열정을 걱정하는 소정이에겐 아직 그녀가 불을 지피고 싶어지는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는 깊고 그윽한 시선을 늘 지니고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 실마리가 소정이에게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