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남자들의 무뚝뚝하고 낮고 건조한 목소리를 코맹맹이로 바꾸게 하는, 그리고 세상 부드럽게 안부를 묻게 하는 힘을 가진 달이다. 달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새 사람 식구였다면 아마 나는 그를 시샘하는 마음에 앓아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마법은 세 남자와 함께 딱딱해져 가던 내 마음도 스르르 녹여 결국 함께 코 맹맹이 소리로 쭙쭙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그 사랑은 집 식구들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조카, 이모, 외삼촌 등등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이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달이의 도도함은 몸짓의 아우라로 퍼져나갔다.
그런 달이에게 위기가 닥쳤다. 어제 언니네가 새로운 냥이 가족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노란 치즈 위에 보송보송한 병아리 털 뭉치를 올려놓은 모양새의 아기 고양이였다. 처음 그 아깽이 사진을 본다면 바로 2초 만에 흐뭇한 아빠의 미소로 입술의 근육과 눈가 근육을 파르르 떨게 만든다.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아기 고양이에게 우린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연분홍 파스텔톤 젤리에 작은 콧구멍, 게다가 발은 순백색의 흰 양말을 신고 가지런히 두 발을 모은 채로 잠이 들어 있다. 천사 냥이가 따로 없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뛰어가 안아보고 싶었지만 먼 거리이기에 온 식구가 조카의 실시간 아깽이 상태 보고에 귀를 쫑긋거렸다. 다양한 포즈 변화의 사진과 그저 꼬물꼬물 기었을 뿐인 짧은 동영상에 '으... 아.... 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고렇게 어린것은 자신의 존재가 이렇게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한참을 폰을 보며 몰랑몰랑한 마음에 빠져 있는데, 순간 '이야옹~' 하며 내 다리를 스쳐가는 존재가 있었다.
'허걱! ' 우리 달이가 이렇게 뚱냥이였나 싶다.
얼굴 볼은 터질 듯하고 (물론 털 정리가 안 되어서 얼큰이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통은 엄마가 대충 아무렇게나 가위로 잘라 듬성듬성 쥐 파먹은 털 모양새며, 발바닥은 어디를 굴렀는지(씻은 지가 언제니... 그래도 그루밍으로 최소한의 청결은 유지해야 하지 않니...) 연탄 빛을 자랑한다. 구름 빛의 털이 매력적이었는데 지금 보니 씻지 않아 생긴 얼룩 같아서 2초 만에 심란해져 온다. 이 더위에 저 녀석을 씻겨야 할까... 털을 밀어야 할까...
달이는 가족들의 사랑의 외도를 눈치챘는지 왕방울 만한 눈을 껌뻑거리며 우리 주변을 어슬렁댔다. 거기다가 나를 쳐다보라는 짧고 애앵하는 소리를 연거푸 애절하게 낸다. 깃털 앞에 앉아 야옹거리기도 하고 간식 통 앞에서 벌러덩 눕기도 한다. 변하는 사랑에 대처하는 자세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동물들은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더니 우리의 사랑이 슬며시 아기 고양이에게 옮겨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것 같았다. 평소에는 코 맹맹 소리에 선택적인 반응으로 우리의 애간장을 녹이더니 어라, 오늘은 자진 애교 소리와 몸짓을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건강하게 통통해진 뱃살이며, 듬성듬성 잘못된 털 정리며, 그리고 꼬질꼬질한 털 모양새의 원인을 달이에게 모두 전가시키기엔 집사로서의 찔리는 점이 좀 많긴 하다. 나를 보고 큰 눈을 꿈뻑꿈뻑대는 표정이 집사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건 아닌가 움찔 놀란다. 그냥 순둥순둥 자라도 예쁘기만 하다는 이유로 방치한 집사가 이제 와서 파릇파릇한 아기 고양이에게만 홀려 있다니 말이다.
70년대 모 광고에서 "개구쟁이여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문구가 성행했었다. 그 이면에는 부모가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결국 그 외 수만 가지의 것들을 요구하게 되더라는 후일담이 있었던 것처럼 건강하게 아프지 말라고 기원하던 나의 집사 초반기의 마음가짐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나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자식 육아방식이 그려진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로서의 존재와 집사로서의 존재가 그리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애정은 넘치나 언제나 에너지가 부족해 세심한 육아와 케어는 언제나 부족한 상태이다. 그 부족함을 아이들과 달이는 재깍 채워달라는 신호를 다양하게 보낸다. 그 신호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더 야무지게 똘똘하게 자라지 못하는가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불쑥 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함께 존재해서 기뻤던 그 초심을 돌아보려고 한다. (덩달아 다 커 버린 큰 아들들도 조금은 유연한 눈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우리의 달이는 여전히 우리 집의 사랑 일 순위이다. 오늘도 달이의 따뜻한 눈길에 위로받고 또 그 사랑에 네 명의 집사들은 절절한 코맹맹이 소리를 보낸다.
"달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우린 러브 포에버야~"
그래도 저 멀리 아깽이는 어떤 꼬물거림으로 사랑을 퍼뜨리고 있을지 심히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