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에너지냐

지혜로운 쇼핑을 알고 싶어...

by 소록소록

옷장을 열어보니 작년엔 무엇을 입고 살았나 싶었다.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여름이 가장 심각하다. 출퇴근할 일이 없으니 여름옷이라고 해봤자. 헐렁헐렁한 셔츠와 바지,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원피스 정도이다. 자주 빨아있는 계절이니 옷은 어느새 후줄근해져 있고 과감히 버리기엔 아까운 생각도 든다. 이러다 예의를 갖춰 입고 나갈 일이 생기면 옷장을 뒤져 정말 이렇게 옷이 없는 것인지 당황스러워진다. 외출용 교복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먹고 백화점을 들렀다. 오늘은 편안함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입고 나갈 옷을 사 가자 다짐했다. 그냥 구경삼아 돌아볼 땐 그렇게 예쁜 옷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비장하게 먹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옷이 없었다. 그저 집에 있는 셔츠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옷들이거나 아니면 과한 프린트로 옷장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 디자인들만 눈에 보인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매장에서 꼼꼼하게 한 번 보고 별 게 없으면 그냥 돌아가야겠구나 체념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화려한 빛깔의 옷을 구매하고 있었다.


흘낏 돌아봤다. 무심코 봤던 옷인데 다시 보니 예뻤다. 내가 선뜻 살 옷의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입어보니 나쁘지는 않았다. 마음에 칠십 프로 정도 만족이었다고 해야 할까. 구매하려고 하니 세일도 하지 않는 품목에 가격이 착하지는 않다. 선뜻 사기에 망설여졌다. 한 번 둘러보고 오겠다고 매장을 나온 후 머릿속엔 살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가득 찼다. 딱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좀 새로운 느낌으로 입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기엔 가격이 착하진 않고... 이럴 때 쇼핑메이트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


잠시 쉴 겸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라 30퍼센트 정도 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빠릿빠릿한 사람들은 이렇게 인터넷으로 싸고 좋은 물건을 구매할 텐데 나는 백화점을 나와야 옷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나도 참 구식 인간이구나...'

혼자 대단한 걸 알아낸 것처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쇼핑은 에너지를 뽑아 먹는 귀신이다.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인터넷 구매를 해보자 검색했다. 친절한 블로거가 산** 브랜드를 독일 공식 홈피에서 절찬 세일 중이라고 알려줬다. 자세히 보니 백화점에서 흘낏 본 최저가의 구입처는 해외직구라고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어디 얼마나 더 싼 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독일 공식 홈피를 찾았다. 내가 백화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본 매장의 옷들이 거의 다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제품들이 깜빡깜빡거리며 세일을 알리고 있다. 최저 30%에서 최대 50%까지. 유로 환율이 얼른 계산이 잘 안 되었지만 대충 봐도 백화점 가격의 절반 정도이다. 아! 신세계였다.


백화점에서 잃어버렸던 구매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구의 특성상 미화 150불 이상이면 관세를 부담해야 하고 옷마다 사이즈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입어보지 않고는 덥석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한참 구경을 한 후에 결국 백화점에서 보았던 그 옷을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했다. 한국으로 직배송이 안되니 배대지를 등록해서 독일 주소를 하나 거쳐야 하고 일일이 쇼핑 목록을 배대지에 기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영어도 아닌 독일어가 되니 거의 그림을 읽는 수준으로 등록을 마쳤다.


인터넷 쇼핑을 시작해서 고르고 배대지 설정하고 구매하고 카드 결제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뭔가 대단한 것을 산 것도 아닌데 겨우 상의 하나 사는데 아침엔 백화점으로 오후엔 인터넷으로 내가 무엇을 한 건가 싶다. 하루의 시간을 투자해서 칠팔만 원의 돈을 세이브했다면 성공적인 것일까. 기쁨보다는 피로감이 먼저 밀려온다. 구매한 옷이 아직 손에 쥐어진 것도 아니니 만족도도 떨어진다. 그저 내 카드값이 조금 줄었구나 만족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감흥도 별로 없다. 내 시간과 노력에 알맞은 대가가 아니었을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력 떨어짐에 다소 억울해지기도 했다.


다시 무언가를 사기 위해 백화점과 직구의 선택 위에 선다면 나는 무엇을 택할지 사실 고민이 된다. 눈에 보이는 돈을 절약하는 것도 유혹적이긴 하지만 그에 들일 내 에너지도 나는 좀 아깝다. 돈이 많다면 백화점에서 쾌적하게 입어보기도 하고 친절한 매니저의 조언도 들어가며 옷을 사는 것을 택하고 싶다. 알뜰할 수 있는 정도와 내 에너지의 소비를 어느 정도로 맞출 수 있을지 양팔저울에 재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좀 더 능숙한 인터넷 쇼핑러라면 이야기는 달라질까.


갑자기 몰려든 안구건조증과 지끈지끈 올라오는 두통으로 소파에 누웠다. 그래 다음번엔 그냥 오프라인 구매를 하자 마음먹는데 또 한편에는 굳은 돈으로 뭘 할까 하는 행복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음... 다음번 선택은 나도 알 수 없다. 그나저나 독일에서 출발하는 내 옷은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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