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록소록 Feb 22. 2021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어린이의 세계>를 읽고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거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어린이의 시기를 건너왔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 세계를 다시 한번 더 학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네가 그런 마음이지? 다 알아...' 하며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신호를 보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건 이제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멀리 떨어져 나온 나의 두 사춘기 아들을 바라보며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그리워했던 그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고 또 어린이의 세계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작가 김소영은 출판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아이들의 독서 선생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기에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어린이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졌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어린이의 세상을 지나왔지만 왜 어른들은 그때의 마음을 깡그리 잊게 되는 것일까. 내게도 작은 일에 두려워했던 마음,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던 마음, 어른들의 노골적인 무시에 화가 났던 마음, 반대로 나를 존중해 주던 어른의 마음에 귀하게 대접받는 것 같아 마음이 부풀어 오르던 그 감정을 어렴풋이 다시 기억해 냈다. 너무도 빨리 그 마음을 닫아 버리고 어른의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반성하게 된다. 

예전 둘째 아이가 좋아하던 식당이 있었다. 맛난 반찬이 좋아서 그랬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이는 내게 고백했다. 음식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존댓말로 자신에게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어준 것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따뜻한 눈빛으로 마주 보고 의견을 물어주는 아주머니의 태도를 나도 기억했기에 아이가 받았을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그 순간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어른과 동등한 입장에서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쉽게도 어린이라는 세상이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지나가는 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해 주는 일을 잊을 때가 많다. 어른에게 딸려 오는 한 세트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 아이는 이런 대접이 만족스럽고 기뻤던 것이다. 

최근 아동학대에 관련된 처참한 뉴스를 떠올리면 어른들이 갖는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고개를 떨구게 된다.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고개를 당당히 들기에 나 역시 마음으로는 아이를 가르칠 대상으로 혹은 아직 덜 성숙된 자아로 생각하여 함부로 대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의식 중에 그들의 결정권을 쉽게 빼앗기도 했을 것이고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따르게끔 한 일도 많았다. 

이 책에 소개된 선생님과 독서를 배우는 아이들의 에피소드는 아이들이 얼마나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며 독창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른이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조금 더 가슴을 열어본다면 그들의 생각이 마음에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아이를 대한다면 어른들은 그들을 얼마나 오해하고 무례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는 진실 한 가지는 아이는 내가 아이에게 한마음과 행동 그대로를 다시 내게 전달한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했는지에 따라 아이들이 내게 주는 존중과 배려의 정도는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아이 앞에서 다시 한번 깊은숨을 쉬고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 

작가는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자신에게도 해준다고 기록한다.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래고,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고 한다. 어린이에게 주는 정중함과 사려 깊음을 나에게도 실천할 때 나는 나를 좀 더 잘 돌보게 된다는 대목을 읽으니 어린이이건 어른이건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인정받고 싶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백세 인생을 사신 김형석 교수의 자녀 교육법에 대한 인터뷰 글이 떠오른다. 자식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유를 사랑해 주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격려하는 것이 어린이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 된다고 하셨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타인에게 특히 부모로부터 존중받고 또 나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꿈나무를 상상해 보면 얼마나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어른이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더 잘 돌보고 성장하게 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하고 깊은 삶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