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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Apr 05. 2021

생이 주는 선물

<다시, 올리브>를 읽고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작품의 후속작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 두꺼운 책 한 권에서도 다양한 인물과 사건으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리저리 다각도로 조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올리브>라는 책으로 돌아온 올리브는 여전히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고령이기에 더 할 말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녀에게 세상은 불만 가득한 것들 투성이이기도 하면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반짝거린다.

누군가 그녀를 만난다면, 상대가 그렇게 올리브의 심기를 심하게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바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물어올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그녀는 상대가 살아온 삶에 그래서 느끼는 감정에 온 촉수를 동원해서 함께 느끼고 생각한다.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제자였던 앤드리아는 미국 계관 시인이 되었다. 우연히 아침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그녀를 알아본 올리브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 특유의 촉수로 그녀를 훑는다. 시인이 된 제자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올리브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시로 써도 좋다는 말을 웃으며 남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올리브 집 앞으로 전달된 문학잡지에는 과연 그녀가 올리브에 대해 쓴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말을 걸어오다>

삼십사 년 전 내게 수학을 가르쳐준 누군가는/

나를 겁에 질리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침 먹는 자리로 와서 앞에 앉았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채/

내가 늘 외로움을 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올리브는 앤드리아가 바라본 겁에 질려 있는 자신을 다시 생각한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인생은 그렇다. 한순간에 훅 하고 따귀를 맞으며 깨닫는다. 그런 인식은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삶의 어느 순간에도 그것들은 내 따귀를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올리브는 나이 들어감을 부정도 해보고 비난도 해보지만 결국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간이 되었을 때 다시 생각해낸다. 자신의 곁을 지켰던 첫 번째 남편 헨리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두 번째 남편 잭 역시 좋은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에게서 멀리 달아났던 아들 크리스토퍼가 이제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팔십 평생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그제야 깨닫지만 이미 늦었음을 안다. 

<다시, 올리브>는 주인공 올리브가 칠십 대에서 팔십 대를 넘어가는 시기의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기억력을 잃고, 체력이 소진하게 되며, 소중한 이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젊었을 적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올리브마저도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를 깨닫게 되는 시기가 노년의 시기이다.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올리브는 말한다. 스스로의 존재가 가벼워지는 것에 자유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존재에서 상대의 존재로 관심을 뻗아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삶은 더 깊어진다. 깊어진 삶에서 다시 자신을 돌아볼 때 좀 더 성숙한 스스로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소설이 이토록 인간의 깊은 면을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하는 일임을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감탄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좁고 편협한 시야에 광 스펙트럼의 기능을 가진 안경을 쓰게 해 주는 일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다양하며 그들의 삶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한 광대한 인생의 의미가 놓여 있다. 그것만으로 인생은 충분히 설레는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올리브의 시선으로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당신은 인생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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