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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Sep 29. 2021

그때 그 도서관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


내가 책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던가를 떠올려보면 답이 모호해진다.

책은 늘 내 곁에 있었지만 책이 있어 참 좋구나를 생각했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동네에서도 아주 높은 언덕에 있었다. 학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로 산이 있었으니 아침 등교 때마다 그 언덕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문을 통과하곤 했었다. 내가 학교에 대한 가장 좋은 기억이 있다면 그건 꼭대기 층의 도서관이었다. 햇볕이 잘 들던 도서관은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우리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책장에는 오래된 문학전집이나 낡은 옛 소설, 그리고 손이 잘 가지 않는 종목의 책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물을 발견하듯 흥미로운 책들을 찾아내곤 했었다. 그 시기가 그리 아름답진 않았을 텐데 그 도서관의 따뜻했던 기운이 그 장면을 영화처럼 추억하게 만든다.



대학생 때에도 항상 책을 손에 쥐고는 있었지만 내겐 다른 사생활도 중요했다. 노느라 바빴고 하루는 짧았다. 직장 생활 때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못 읽는 하루가 더 많았고 겨우 시간을 내서 책을 손에 잡으면 피곤에 그냥 잠들어버리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다행히 회사 건물에 큰 대형서점이 들어와 있어 짬짬이 새로운 책을 구경하는 일들은 내게 기쁨을 주는 취미 중 하나였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으면서 나의 청소년기의 독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의 청소년들도 책보다는 티브이나 핸드폰 등 다른 즐거움을 주는 매체에 빠져 독서 교육을 시키는 일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의 대학입시 시험인 바깔로레아를 치르기 위해선 독서와 비판적 글쓰기가 필수 능력일텐데 그들을 책 읽기로 유도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수능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들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수능보단 책 읽기를 시키려는 열정이 좀 더 멋져 보이긴 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열심히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며 책의 흥미를 느낀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기를 권하게 되고 그때부터 책 읽기는 문자 읽기가 되어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럼 언제까지 책을 읽어주어야 하나.



청소년들에게 독서 수업을 하는 방법으로 책의 내용을 분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수업 시간에 책을 읽어주라고 작가는 권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향수>에서 어떻게 도시의 냄새에 대해 묘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집어치우고 그 대목을 찬찬히 작가의 말에 젖어들게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청소년들은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읽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떻게 앞으로 전개될 것인가... 호기심이야말로 우리가 책을 손에 들 수 있게 하는, 그래서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어대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아니던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교훈이나, 상식이나 일상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답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읽는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일상의 쓸모에 대해 답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전문적인 작가라면 생활비를 벌기 위함이라 말할 수 있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더 수익률이 좋은 일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우리가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읽고 쓰는 이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소설이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소설을 '소설처럼' 읽어나가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그 읽기를 즐겨하기 위해 독자로서의 권리를 작가는 조목조목 설명한다.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고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등등. 당연하기도 하지만 또 소심한 독자라면 누리지 못할 권리가 될 수도 있겠다.



각자의 삶의 속도에 따라 책이 멀어질 때에도, 또 가까워질 때도 있겠지만 책의 맛을 아는 독자라면 책은 늘 우리의 삶과 함께 간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 같다. 기쁠 때, 슬플 때,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때에 책장을 두리번거리며 내 영혼을 다독일 만한 글을 찾게 된다. 그런 위로를 독서가 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놀랍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바다가 바라보이던 그 도서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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