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도 좋은데... 우리 집이 더 좋은 것 같아..."
제주도로 여행을 간 남편의 톡이 도착해 있었다. 이럴 남편이 아니다.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여행을 사랑한 어쩌면 사주팔자를 살펴보면 역마의 살이 충분히 들어가 있을 그런 사람이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한 번도 집을 떠난 적 없던 그가 이번엔 정말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우린 짧게라도 단 둘 여행을 한 번 갔다오자 계획을 세웠지만 첫째 아이가 갑자기 집에 머물게 되어 나는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여행에 대해 그럼 둘 다 가지 말아야 하나 아니면 혼자 가나, 그게 아니면 다른 여행 메이트를 구해야 하나 등등의 문제로 남편은 고민을 했었다. 결국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가까스로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변경되었다. 고등학교적 친구와 단둘이 떠나는 남자 둘의 여행이 어떨지 남편은 떠나기 전부터 살짝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그 친구와는 어릴 적 친한 친구이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만나오고 있고 몇 년 전엔 다른 동창 친구들 세네 명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온 경험도 있었다. 남편은 친구와 전화통화로 여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불안한 예감을 토로했다. 남편은 휴가이니만큼 풍광 좋은 오름을 걸으며 힐링을 하겠다는 의견이었고 친구는 장비를 챙겨 한라산 등반을 하겠다며 이미 한라산 등반 코스 예약을 마친 상태라고 했다.
심란해하는 남편에게 함께 여행을 가더라도 꼭 함께 다닐 필요는 없는 거라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저녁에 만나 소주 한잔 하는 재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고개를 끄덕일 뿐 개운한 마음은 아닌 것 같았다. 여행기간 내에 남편의 톡 내용이 계속 신경 쓰였다. 좋은 풍광에 맛난 음식을 먹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기분이 어떤지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여행을 다녀온 남편은 그제야 여행의 힘들었던 점에 대해 토로했다. 원하는 여행 코스가 달라 각자 움직인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친구를 보는 일이 그에겐 다소 놀라운 일이었나 보았다. 음식점 종업원에게 말하는 친구의 태도, 흡연에 관한 그의 습관, 그리고 함께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 내용이 남편에겐 그가 친했던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하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친구 네 명이서 함께 여행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단둘 여행에서는 너무 크게 와 닿아 남편으로서도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남편은 여행 내내 여행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여행 메이트가 신경이 쓰여서 온전히 여행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맛있는 참돔 회를 먹고도, 은빛 물결 바다를 보고도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다니 그가 집이 더 좋다는 톡을 남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급기야 친구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남편의 눈은 퀭해 보였다.
"아이구 다 큰 어른이 뭐 그런 상황에 유연하지가 못해?... 여행 가면 다 그런 거지..."
라며 받아치려다 남편의 마음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나의 기억이 떠올라 입안에 삼켰다.
여행 메이트는 중요하다. 더욱이 각자의 삶의 패턴이 굳어진 어른들에게는 힘이 들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다 같이 코를 골 텐데 무슨 상관이냐 할 수 있지만 중년의 불면에는 짜증이 올라올 수도 있다.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의 언어를 나열하며 공감해 주길 바라며 옆지기를 쳐다보는데 담배 연기를 뿜으며 인생 고락의 부정적 기운을 내뿜는다면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일 수 있음을 나 역시 잘 안다.
남편은 그와의 단둘 여행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수행의 여행을 훌륭히 마쳤노라 비장하게 말했지만 어쩐지 그의 다짐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대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도미토리라는 룸 형식의 방에서 생판 모르는 남과도 잠을 잤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제는 절대 그럴 수가 없겠구나 싶다. 누구와도 무엇을 해도 신기하고 즐거웠던 젊을 적 여행의 기분도 어렴풋이 그리워졌다.
남편에겐 힘든 여행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내가 얼마나 나라는 사람에만 익숙해져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나의 삶의 패턴에 그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불쑥 두려움이 밀려온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기꺼이 두 팔을 벌리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