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매드랜드>
어제 두 여자를 만났다.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든 요즘, 단비 같은 만남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상대의 삶에 내가 충분한 관심을 갖고서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정현종의 시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오는 것이기에 어마어마한 일일 것이다. 그들의 삶이 궁금해서 자세를 갖추고 에너지를 모아 오로시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영화 <노메드랜드>를 마음속에 꽁 지니고 있다가 어제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영화 포스터의 광활한 배경 속에 서 있는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표정이 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활동적인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디지털 노매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는 무지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온 세상의 길을 내 집 삼아 돌아다니는 노매드들의 삶이다.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맡은 역 '펀'역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의 파산과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집을 잃고 그녀의 커다란 밴을 집 삼아 살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노매드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그들의 삶이 깊숙이 그녀의 삶에 들어온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을 알고 그 짧은 삶을 병원에서 보내지 않겠다며 큰 트레일러를 매달고 알래스카로 떠나는 노년의 한 노매드는 말을 잃게 만든다. 삶이란 얼마나 많은 숨을 쉬었는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숨을 멎을 만한 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많았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노을과 별빛과 새소리와 광활한 자연 앞에서 숨을 멈춘다.
노매드들은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에 그들의 만남은 길지 않다. 펀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서로가 필요한 물건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마음을 상상한다. 그들이 꿈꾸는 게 무엇인지 홈리스라는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기어코 네 바퀴에 의지해서 떠나는 그 마음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프란시스 맥도먼드라는 배우에게 흠뻑 빠져들게 된다. 강인하면서도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와 진심을 다하는 그녀의 눈빛은 감동적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그녀가 실제로 노매드 생활을 했다는 것과 영화에 등장하는 노매드들도 실제의 인물이라는 점, 그들도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유명 배우라는 것을 몰랐다는 점을 영화를 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왔는데 저녁 뉴스엔 온통 아카데미 시상에 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과 그녀의 귀엽고 재치 있는 소감 인터뷰가 계속 방영된다. 그녀의 인터뷰 풀버전을 보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녀가 열심히 밖으로 나가 일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두 아들에게 감사하다는 대목에서였을 것이다. 큰 배우는 밖으로는 강한 전사이기도 하지만 연약한 엄마의 마음을 갖고 있구나 싶다. 진심은 마음을 울린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이 영화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칼이 있다. 그 칼은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일을 사랑하다. 정말 감사하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멋진 여성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긴 인생을 그녀들의 신념과 의지로 잘 살아온 삶이라 더 믿음직스럽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렇게 멋진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화려한 수상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자신의 삶을 힘껏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여기저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어떤 칼을 들것인가.
누군가가 나에게도 이렇게 질문을 던질 것 같다.
"그래 너의 삶은 어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