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눈을 뜨면 빨리 새벽의 좋은 공기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키게 된다. 하루 중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몸과 환경의 기운을 느끼게 된 건 나이가 든 탓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골똘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진실은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 아침 공부를 해 보겠다고 새벽밥을 먹고 동네의 가장 언덕바지에 위치한 학교를 낑낑대며 올라가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기보단 아침의 고요하고 충만한 에너지가 내 몸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었다. 대학시절 강촌으로 MT를 떠나 밤을 꼴딱 새운 후 물안개 피어오르던 강가에서 배를 타며 느꼈던 새벽 공기의 청량함은 취기 속에서도 더 풍부하게 온 몸을 휘감아댔다.
오늘도 얼른 몸을 일으켜 눈곱만 간신히 땐 채 자동반사적으로 집을 나선다. 마스크란게 이렇게 편리하게 얼굴을 가릴 수 있다니 좋은 점도 있다. 이 세상에 무조건 나쁜 것도 무조건 좋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다. 아침 공기는 서늘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아침 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신다.
내게 아침 산책 코스는 두 가지 선택사항이다. 첫 번째는 바닷길을 따라 걷는 것과 두 번째는 찻길과 신호등을 몇 번 건너 숲 속 공기를 마시고 오는 길이다. 바닷길은 집에서 접근성도 좋고 평지이면서 바다 풍광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분들과 개 산책을 위해 나온 이들, 그리고 러닝족들을 만날 수 있다. 평탄하기도 하고 집에서 왕복해서 걷고 오기에 오천 보 정도의 적당한 거리라 주로 그 코스를 이용하지만 오늘은 두 번째 코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두 번째 코스는 골목골목을 돌아 찻길을 건너 큰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 이른 아침 출근족이 내뿜는 매연을 조금 마시고 걷다 보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만나게 된다. 나의 1단계 애정 공간이다. 조용히 성당에서 묵상의 기도를 하고 마음을 정돈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오늘도 더 즐겁게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께 의지하겠다는 짧고 명료한 기도를 드리고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다시 골목골목을 돌아 조금씩 높아지는 제대로 올라가다 보면 동네의 뒷산과 마주치게 된다. 주택 바로 옆에 위치하지만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공간이다. 이쯤에서 한 번 쉬어말어를 고민하며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풍광 좋은 위치에 나를 반기는 벤치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난다. 2단계 애정 공간에 이르렀다.
'그래, 이런 맛이 있으니 내가 눈뜨자마자 걷지 않을 수가 없지...' 가빠진 호흡과 러너즈 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짜릿해지는 기분 좋은 뭔가가 뇌를 자극한다. 적당히 습하고 차가운 공기에 흙냄새가 뭉근히 배어 나온다. 마스크를 잠시 벗고 크게 호흡하니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다. 오늘 하루를 움직일 모든 에너지를 다 빨아들일 기세로 호흡한다.
내려가는 길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구불구불 찻길을 따라 내려가며 골목을 마주치고 신호등을 몇 번 건넌 다음 대형 버스의 매연을 좀 마시며 걸어야 한다. 다음 목표는 신선한 원두를 갈아 내린 동네 커피집이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향기 좋은 커피까지 손에 쥐겠다는 야심으로 씩씩하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른 시간임에도 분주하다. 커피 총각과 인사를 나누고 진하고 뜨거운 커피 한잔을 손에 쥐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힘이 불끈 솟는다.
나의 산책 코스 1인 바닷가 길이 순탄하고 평화로운 길이라면 산책 코스 2는 험난하긴 하지만 몇 가지 행복 포인트로 그 험난함을 이기게 하는 길이다. 마치 우리의 인생과 같다. 순탄한 길만을 평온하게 걷는 삶을 원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힘들고 지치는 길을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포인트에서 충분히 만족하는 지점을 만나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삶을 원하기도 한다. 힘들 땐 힘들구나 하지만 그 뒤엔 달콤함이 오겠지라고 자각하는 일, 그리고 만족되는 그 순간에 충분히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물론 험난한 길이 끝도 없을 것 같은 암울한 마음, 그리고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행복 포인트가 맞았나 하는 끊임없는 의심, 그리고 더 나은 포인트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암울함, 의심, 그리고 아쉬움 역시 또 하나의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걷는다면 그래도 신선하고 활력 넘치는 에너지 하나, 그리고 뜨겁고 향기로운 커피의 향 정도는 우리 인생 어디에서든 숨어 있을 거라 믿는다. 인생은 하나의 소풍이었다고 말하는 천상병 시인처럼 긴 산책길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생생하게 느끼며 사는 삶이길 바란다.
오늘도 신선한 하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