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건...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by 소록소록


빛나는 5월, 가정의 달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름다운 계절을 가정의 달로 지정한 건 그저 선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의도된 불순한 계획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불순한 마음 일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을까. 결혼 이후였을까. 5월이 시작되면, 아름다운 5월을 만끽하기도 전에 제사를 앞두고 있는 며느리의 마음이 되어 숙제를 눈앞에 미루어 두고 하지 않는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어버이가 둘도 아닌 네 분이 병풍처럼 우리 뒤에 자리하고 계시고, 조카까지 합산된 어린이가 줄줄줄 있고, 그에 따른 스승님들도 모른척할 수 없는 처지에, 게다가 남편의 생일까지 겹쳐 5월 한 달을 행사로 몸살을 앓는 그런 루틴이 예상되곤 했다. 5월의 끄트머리 어디쯤에 있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더 이상 행사로 기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차오른다. 그저 5월을 아름다운 장미나 만끽하며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답게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에 휩싸여 가정의 달의 의도를 귀찮고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요즘은 결혼 초기의 그런 마음에서는 조금 자유롭다. 잘해야 한다는 욕구를 내려놓은 탓이다. 왜 그렇게 잘하려고 했을까. 시어른들에게 좀 더 칭찬받고 싶은 새댁의 마음에다가 아이들에게는 좀 더 완벽한 엄마, 숙모, 이모, 고모가 되고 싶었다. 선생님들에겐 센스 있는 학부모로 감탄을 주고 싶고 남편에게도 이 정도면 우리 와이프가 최고이구나 하는 마음을 일게 하는 그야말로 나는 슈퍼우먼이기를 혼자 채찍질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 마음의 젊은 나를 떠올리면 짠하기도 해서 쓰담쓰담 내 피곤했던 젊음을 안아주고 싶어 진다.


지금은...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들과 식사 약속을 잡아두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발품 파는 선물도 무리해서 하지 않으며 그저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미 어린이가 아니니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하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스승님들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으니 이만하면 5월도 즐길 만해진 거다. 가정의 달이라고 속속 도착하는 백화점이나 쇼핑앱들의 넘쳐나는 홍보 메시지를 나는 콧방귀를 날리며 지워버리며 고소해한다. 아... 이게 바로 늙었다는 의미였을까. 좋아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편지가 하나 꽂혀 있었다. 무심한 흰 봉투여서 요즘도 이렇게 우편으로 전단을 보내는 이들이 있나 싶어 꺼내는데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 아이의 글씨다. 어릴 때부터 반듯반듯한 글씨체로 가지런히 쓰던 아이다. 연애편지를 받은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레 봉투를 뜯었다. 설마 청구서나 성적표나 이런 건 아니겠지?

'엄마, 아빠 보세요... '로 시작하는 아이의 글이 편지지 한 장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큰 아이는 성인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날에 대해 그리고 집을 떠나 생활하면서 우리 가족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아이의 심정, 그리고 아들의 역할이 아닌 부모가 갖게 되는 마음과 역할이 어떨지에 대한 아이의 솔직한 감정을 단정하게 적어내고 있었다. 순간 눈앞이 흐려진다. 아이가 이런 마음으로 멀리서 생활하고 있었구나. 내 아이이지만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 이런 마음을 내게 전하는구나 생각하니 먹먹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만 뚝뚝 흘러내렸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던 아이가 이렇게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다니,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내 노고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나의 노고도 아니고 그저 선물이었구나 싶다. 이렇게 기쁨을 준 아이에게 나는 평생 사랑의 마음을 다 주어도 부족하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라고 어느 작가가 그랬다. 아이가 없었다면 인생에서 감정의 계곡을 이렇게 깊고 진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최근에 작은 아이의 사춘기를 지켜보는 마음이 아슬아슬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는데 그 감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 나가며 힘이 되어 주는 일, 그리고 기쁠 땐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 그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가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큰 아이가 스승이 되어 이제 엄마에게 알려준다. '엄마, 가족은 이런 거였나 봐요. 이런 가족 속에서 잘 성장하게 해 줘서 감사해요...'


큰 아이의 기운을 받아 작은 아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버찌야.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너와 형을 낳은 일인 것 같아. 지금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멋진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늠름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엄마는 지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 엄마가 고슴도치 엄마래서가 아니라 엄마니까 알아. 버찌 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이니까 항상 두 어깨 펴고 자신 있게 기쁘게 생활해. 엄마 옆에 있어서 너무 고마워 버찌야."

차가운 눈길의 사춘기 아들에게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할 말을 문자로 용기를 내어 보냈다. 우리 엄마가 드디어 이상해졌구나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 용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5월, 가정의 달은 무르익어 가고, 주말엔 어른들과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금요일, 작은 아이는 다시 기숙사에서 집으로 복귀하고 우린 주말 동안 또 남남처럼 싸한 분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린 같은 기차를 타고 있고 보이지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 기차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그래서 오던 길이 좀 험난하긴 했어도 함께 와서 그래도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가정의 달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예쁘게 핀 장미를 바라보면서 좋은 여행지에서 황홀한 풍경을 바라봤을 때에 생각나는 이들이 가족이라면 아름다운 5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함께 기뻐하고 웃을 수 있도록 한 건 꼬인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과한 욕구와 의무감으로 꼬인 시선을 보낸 내 검은 마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즐기자.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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