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잘 살 수 있을까

by 소록소록

공주가 나오는 동화의 엔딩은 그랬다.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난 공주님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남편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최근에 남편과 다툼이 있었다. 결혼 이십 년 차에 부부 싸움이라면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아직도 싸울 게 있더냐 혹은 남편이 불쌍할 때도 되었는데 또 아니면 그래도 열정은 살아있구나 등등이다. 글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결혼 이십 년 차이면 싸우지 않아도 살 만하고 싸워도 또 그럭저럭 다시 살아갈 만한 구력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선택하는 건 열정이 남아서도 심심해서도 아니다.



싸움의 발단은 역시나 언제나 보잘것없다. 잠깐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음 때문이다. 부부 싸움에서 중요한 건 발단이 아니라 전개에 있다. 전개 과정이 매우 위험하다. 감정이 상해 있는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상대를 자극하는 전개를 펼치다간 백전백패가 된다. 주로 부부 싸움의 절정은 이 전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어이없이 일이 커지기도 한다. 물론 화려한 절정이 지나고 나서 그래도 엔딩에 가까운 결말에 이르러 화려한 불꽃이 사그라들게 되는데 그건 바로 발단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 발단이 이럴 가치가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그 불꽃은 의외로 쉽게 진화가 된다. 불행한 것은 발단이 아니라 전개 단계에서 상처 주었던 말들이 가슴 한켠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 말들은 삶의 한순간에 툭 건드려져서 와르르 몰려나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우리의 싸움도 그랬다. 발단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미미했으나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니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서운했던 점이 그로서는 이해가 안 되거나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그 순간, 나는 이십 년의 결혼 생활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감이 차올랐다. 적어도 대화가 잘 된다고 생각한 우리 부부에 대한 평가는 나의 환상이었을까. 그 생각에 사로잡혀 절정, 결말은 흐지부지되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오랫동안 이런 싸움을 반복했다면 이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야 할 텐데 왜 자꾸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남편은 이런 싸움이 지나고 나면 화해도 반성도 빠른 편이다.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의 장점 중 하나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좀 과했던 것 같아. 미안해."

"뭐가 미안해? "

"그냥 미안해..."

이 정도의 대화라면 다시 불꽃이 일 가능성이 있으나,


"생각해 보니 내가 좀 과했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내가 이렇게 이렇게 말한 건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네가 듣기엔 그런 의도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아. 하지만 내 맘은 그렇지 않고 블라블라..."

이 정도의 사과가 그의 입에서 나오면 나는 별도리 없이 그의 사과를 못 이기는 척 받게 된다. 게다가 그는 그 사과의 말을 내뱉기 전, 후로 집안일에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 역시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도 그리 완벽한 아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불완전함이 비슷한 수준이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암묵적인 화해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런 화해가 맞을까. 상대에 의해 마음이 상한 지점이 있었다면 그 지점에서 좀 더 구체적인 자아성찰과 다음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결혼 이십 년이 되어서야 드는 것이다. 매번 싸우는 지점이 비슷하거나 화해하는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우린 결혼 삼십 년, 사십 년, 아니 늙어 죽을 때까지 이런 패턴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으로 뻗어나간다. 상대에 대한 섭섭함을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는 것으로 퉁치는 이런 싸움은 그야말로 하나 마나 한 싸움인 것이다.



싸움에는 에너지와 사랑이 필요하다. 상대와 잘 살아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진상 아저씨나 식당 옆 테이블에서 술 취해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와는 싸울 에너지를 낼 마음이 전혀 없다. (간혹 길거리에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목에 핏대를 내고 싸우는 이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남편이나 사랑하는 친구와의 싸움에선 내가 가진 에너지를 힘껏 써서 잘 싸워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잘...



이렇게 잘 싸우기 위해 덤빈다면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과했으면 됐지.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어찌해야 한다. 내 배우자가 없는 힘을 끌어내서 이렇게 열변을 토해내는 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냉정하게 자신과 배우자를 바라봐야 한다. 그 대답을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화해는 커다란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며 싸울 때마다 이건 예전에 한번 했던 레퍼토리가 아닌가 기시감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그조차 쉬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싸울 수도 있겠다.)



5월 말이면 정말 결혼 이십 주년이 된다. 이십 년을 꼭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못 박아 뒀으면 잘 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하루하루 사랑하며 싸우기도 하며 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루 마주 보고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가 없다.



동화 속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젠 잘 싸워 보려고 한다. 그에게 서운했던 내 마음은 왜 이렇게도 보잘것없는 것인지, 그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인 것인지 돌아보지 않은 채 퉁치고 화해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러다 황혼 이혼이 될지도 모른다. 에이. 그래도 난 모르겠다. 일단은 잘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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