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혁의 인터뷰를 보고...
얼마 전 이슬아 작가가 뮤지션 오혁을 인터뷰한 글이 올라왔다.
나는 누군가를 인터뷰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평소 관심 있어하는 인물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고 잘 모르는 인물에 대한 인터뷰이더라도 인터뷰어가 왜 이 인물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을까부터 시작해서 그는 어떤 인물일지를 상상하는 일은 흥미롭다. 게다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조합도 매우 중요한데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소통의 케미가 느껴질 때엔 그 인터뷰는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는 뮤지션 오혁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그의 음악이 아름답고 느끼고 즐길 뿐이다. 평소 말이 없어 인터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들은 오혁의 어린 시절과 현재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슬: 무엇이 두려우세요?
혁: 음... 감을 잃는 것?
슬: 감을 잃어서 후진 것을 만들까 봐요?
혁: 네. 그조차도 인지 못할 정도로 감을 잃을까 봐. 내가 만든 게 별로라는 걸 못 느끼게 될까 봐. 그게 가장 큰 두려움이에요.
슬: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인가요?
혁: 그냥 오래 하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 같아요. 잘하고 싶어서예요. 부끄럽지 않게 잘하고 싶어요.
과묵해 보이는 오혁의 입에선 오랫동안 고민한 듯한 그의 사고가 흘러져 나온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만든 게 별로라는 걸 느끼지도 못한 순간이 오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모든 이의 공통된 점이 아닐까. 운동선수들도 자신이 퇴장할 순간을 고민하듯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이 최고이길 그리고 더 이상 후진 모습으로 자신과 관객들을 속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일 거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떨까. 한때 잘 나가던 작가들 역시 힘을 잃어 절필하거나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들이며 꿋꿋이 펜을 놓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가장 화려한 자신의 능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일은 얼마나 스스로를 고되게 하는 일일까를 상상하게 된다.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손과 어깨에 힘을 주고 책상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는 번역가 박산호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저 쓰레기를 쓰겠노라 다짐하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부지런히 나의 글을 채우고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버리기 힘든 욕심이지만 그 욕심이 또 일을 그르치게도 하는 법인가 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나쓰메 소세키의 책 <인생의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라는 허무한 이야기를 고백했다. 우연히 문학을 공부했고 별 흥미가 없어 다른 걸 해 볼까 하다가 성적이 그럭저럭 괜찮아 교수가 유학을 권했고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유학을 다녀오고 일본으로 돌아와 보니 아는 지인이 신문 한 지면에 실을 글을 하나 적어보라고 해서 한 번 적어 보냈더니 그게 반응이 괜찮아 2편, 3편으로 이어진 게 바로 그 기나긴 장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잘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작가 지망생들에겐 얼마나 힘이 빠지게 하는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면 나쓰메 소세키 역시 대작을 쓰겠다는 욕심이 아닌 그저 한 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썼기에 꾸준히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타고난 재능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뮤지션 오혁의 마음은 그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감을 잃지 않는 것과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알고 인정하는 것. 음악 하는 이들이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존심일 것이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직 그의 음악의 전성기는 상승곡선에 있는 것 같다. 그의 인생이 점점 깊어지면서 음악도 더 깊고 다채로워지리라 기대된다. 그리고 자신의 감에 대해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한 왠지 그는 후진 뮤지션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 그를 보는 것은 좀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