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해 말하자면...

by 소록소록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 얼굴을 본 지가 꽤 되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 집을 들르기로 한다. 가까이 살아도 알콩달콩 서로의 안부를 자주 묻지 않는 우리는 약간 쓸쓸해질 때 서로에게 불쑥 찾아가곤 한다. 무방비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말갛고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투명한 얼굴에는 엄마의 모든 감정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는 갑작스러운 딸의 출현이 반가웠나 보다. 외로웠던 얼굴이 환해졌다. 무심한 딸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에게 뭐라도 기쁜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손자의 기쁜 소식부터 전한다. 대견해 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맑은 얼굴이 한층 상기된다. 온정 없는 딸은 뒤이어 속상한 마음도 전한다. 상기되었던 얼굴은 어느새 딸을 측은해 하는 마음이 되어 눈꼬리가 내려가 버린다. 엄마의 투명한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다 뒤엉켜 있다.


젊을 적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는 나의 감정을 다 이야기하기에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 자식을 힘든 마음으로 내몰기도 했고 또 너무 쉬이 엄마의 감정부터 내뱉는 상황에 우린 늘 우리의 감정을 등 뒤에 숨겨야 했다. 내 감정을 이해하기도 전애 엄마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고 내 감정을 수습했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때의 엄마를 지금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엄마가 딸 이야기를 듣는다. 딸의 속상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의 지난 기억을 함께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끄덕이는 이해의 제스처에 엄마는 자신의 경험을 함께 포개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같은 감정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우리를 동지의 감정으로 묶어 버린다. 우린 엄마 동지인 셈이다. 더 이상 엄마가 내게 충고의 말로 위로하는 마지막 클로징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주름이 생기고 투명해진 엄마의 얼굴은 그저 딸을 이해하는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 얼굴의 엄마가 짠해서 살포시 안아주고 싶었다.


무엇이 엄마를 변화시켰을까.

쉬지 않고 몰려오는 파도가 바위를 깎듯, 산들산들 소리 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꽃잎을 떨어뜨리듯 엄마는 하루하루의 시간의 힘으로 둥글게 둥글게 깎여 버린 게 아닐까. 동그랗게 말린 엄마의 등이 그렇게 숭덩숭덩 잘려 나간 흔적 같다. 그 동그란 등이 안쓰러워 자꾸 쓰다듬어 주고 싶다.


엄마는 뭔가를 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엄마의 말이 아닌 새벽 미사에서 신부님이 하신 강론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닌 잠시 우리에게 머물다가는 것들이라고. 내 것이라고 욕심을 갖는 순간 우리는 힘들어진다고. 잠시 잘 빌려 쓰고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 엄마의 눈이 유순해졌다. 그렇구나. 내가 빌려 쓰는 잠깐의 시간에 이렇게 아등바등 거리고 있었구나.

"엄마, 내일 성당에 가서는 우리 딸한테 넉넉히 좀 빌려주세요 하고 하나님한테 기도 좀 해 주면 안 될까?"

엄마는 철없는 딸에게 눈을 흘긴다.


나도 이십 년, 삼십 년 후엔 엄마의 눈매와 둥근 어깨를 가지게 될까.

나는 그 길을 알고도, 또 모르고도 따라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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