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부자가 된 것 같아!"
엄마는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 그까짓 에어컨이 뭐라고.
어제 새 에어컨을 집에 들인 이후에 엄마의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에어컨 없이 한 평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었으면서 고작 20평짜리 스탠드 에어컨 하나를 새로 샀을 뿐인데 엄마는 부자가 된 것 같단다.
"엄마! 원래 부자 아니었어?"
우리 엄마에게 부자란 무엇인가. 먹고 싶은 걸 사 먹을 때, 필요한 것을 사야 할 때, 그리고 슬그머니 허영이 올라와 사치라고 생각되는 물건을 사고 싶을 때 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자식들이 손자, 손녀들을 키울 때 기죽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킬 수 있고 자립할 때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보장될 때 엄마는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평생 은행원의 아내로 살면서 작은 월급을 쪼개서 세 아이를 공부시키고, 작은 전세 주택에서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늘려가며 살아온 엄마에게 부자란 말은 엄마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단어였다.
엄마 집이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난 이후 엄마는 낡은 에어컨을 버리셨다. 에어컨이 낡기도 했지만 나이 든 부부 둘이서 사는데 에어컨을 틀고 살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십 년 넘게 보낸 셈이다. 매 여름이 시작될 때면 엄마에게 에어컨을 사자고 해도 엄마는 절대 사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만큼 덥지도 않고 에어컨 바람이 싫다고 했다. 아마 "엄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비슷한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엄마 마음이 변했다. 앞으로 더 더워진다고 하니 그래도 있긴 있어야겠다고 하는 말과 동시에 나는 인터넷 주문을 질렀다.
주문이 밀려 이, 삼주 걸릴 것 같다는 안내 전화 와는 달리 주문한지 사흘 만에 설치기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토요일 오후 설치를 해 주겠다고 했다. 이사하고 한 번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아파트에 설치하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실외기실을 닦아내고 배관 루트를 청소하며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허옇고 말끔한 에어컨이 거실 귀퉁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낡은 엄마의 가구 속에서 혼자 빛나는 에어컨이 남의 집 물건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시운전을 하느라 작동을 시키니 보송보송하고 프레쉬한 것 같은 바람이 송송 불어온다. 그때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이 "부자가 된 것 같아!"였다.
엄마의 알뜰살뜰한 경제관념은 참 지긋지긋했었다. 뭐 하나 버리는데 심사숙고가 필요하고 새로운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몇 번은 없어서 아쉬운 일을 겪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슬며시 열어본 엄마의 자개장 안에는 옛날 내가 덮고 잠들었던 이불도 그대로 있다. 그런 아낌 여사에게 이제 사고 싶은 거 하나씩 사고 바꾸며 살라고 말해도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혹시라도 모아둔 돈이 내 죽을 때까지 부족해서 내 자식 고생시킬까 봐, 혹은 내가 죽고 나더라도 자식들에게 뭘 좀 더 남겨주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세 아들을 빠듯하게 키웠지만 이젠 부모의 책임에서 벗어나 늙은 부부 두 분이서 자유롭게 사시는 시부모님들과 생각이 다르다. 엄마는 자식들을 이렇게 멀쩡히 다 키워 두고서도 왜 그렇게 더 해 주지 못하는 것에 연연해 하는 걸까. 얼마 전 종합부동산세니, 양도세니, 증여세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는 엄마가 그렇게 아끼며 모은 돈 다 세금으로 고스란히 나가기 전에 그냥 아끼지 말고 쓰시라고 말한 것이 엄마가 에어컨을 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는 당신에게 돈을 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 자신을 위한 에어컨 구매가 스스로 부자가 된 느낌이 들게 만들었나 보다.
"기사님~ 요즘 에어컨이 잘 나와서 전기세도 많이 안 나오죠?"
나는 엄마 들으라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기사님도 눈치를 챈 것인지 어쩐 것인지 맞장구를 쳐주신다.
"아이구 옛날 에어컨이랑 달라요. 두 분 계시는 데 풍족히 틀어도 몇 만원 안 나올 겁니다!"
엄마에게 이 말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여름은 내 마음이 든든하다. 부자가 된 마음으로 에어컨 리모컨을 누를 엄마를 생각하니 내 기분도 부자가 된 것 같다. 그래! 부자가 뭐 별건가. 내 더울 때 에어컨 틀 때가 부자이지.
여름 내내 에어컨을 자린고비 굴비처럼 쳐다보고 부자 마음만으로 엄마가 지내진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자도 마음의 문제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