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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Aug 24. 2021

백세 일기와 시절 일기

일기를 쓴다는 것은

최근에 일기에 관한 책 두 권을 읽고 있다. 

한 권은 건강하게 나이듦의 정석을 보여주는 김형석 교수의 <백세 일기>라는 책이다. 이 책을 고를 때엔 흑심이 있었다. 일기 애호자로서 백세의 나이가 되면 어떤 일기를 쓰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젊어서는 마음의 동요나 갈등, 그리고 번민이 가득한 글이 가득한데 과연 백세가 되면 삶을 관조하는 마음으로 여유 있는 일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회의가 함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각자의 삶이란 게 너무나 달라서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바이다. 지금의 건강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김형석 교수는 아마도 젊은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의 일기를 보지 않아서 추측만 할 뿐이지만 아마도 정갈하고 규칙적인 삶과 그에 대한 약간의 반성과 다짐의 일기가 아니었을까.(애석하게도 김형석 교수는 40세가 되어서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쩐지 방황과 후회와 얼룩은 그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일기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서두에 선언한다. 자유로운 지성인으로 살고자 했던 김형석 교수에게 일기란 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한 기록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돌아보고 반성하는 삶. 그런 마음가짐이 백세의 인생이 그렇게 바래지지 않고 반짝거리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또 한 권의 책은 김연수 작가의 <시절 일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다행히 좀 더 인간적이다. 불교 경전인 <로힛따사경>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세계의 끝까지 걸어가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로히땃사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걷고 또 걸어 세계의 끝까지 도달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간다 하더라도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절망 같기도 하고 희망 같기도 한 이야기를 건넨다. 바깥으로 소리쳐봐야 결국 답은 들을 수 없으니 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 그것이 작가에겐 글쓰기라고 말하는 그의 생각을 거부할 재간이 없다. 밖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을 끌고 내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 물어보는 일, 혼자 끄적이며 생각의 끝을 잡고 주절거리다 보면 희미하지만 뭔가 알 것 같기도 하다가 모르는 그 마음의 심연을 뒤적이는 일, 그 일이 글쓰기이자 일기인 것이었다. 



은유 작가도 죽으면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한강에 빠트려달라고 딸에게 유언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읽은 적 있다. 유명한 작가 역시 심연에 넘쳐흐르는 많은 말들을 은밀히 노트북에 펼쳐 내고 있었음을 상상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뭘 계속 끄적거리다 보니 어느 날 소설가가 되었다는 김연수 작가는 그 끄적거림이 사람들이 짐작하는 습작이 아니라 그저 일기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일기야말로 정말 훌륭한 글쓰기의 저력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마음껏 상상하고 창작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끄적이는 일이야말로 훌륭한 글쓰기의 동력이 된다. 보잘것없는 내 일기의 가치가 마구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 흐뭇해진다. 



나는 아침 일기형 인간이다. 초등 시절 일기가 숙제였던 때엔 분명 하루에 있었던 일을 돌아보는 반성과 내일의 계획이 담긴 글을 자기 전에 마무리해야 잠이 든다는 철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쏟아지는 잠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내겐 힘든 일이었다. 얼른 끝내고 싶은 숙제일 뿐이다. 자발적 일기 쓰기의 인간이 된 이후에는 아침에 쓴다. 최소한의 루틴이 끝나고 하루를 시작하는 정갈한 마음이 되었을 때 나는 마음껏 카오스 같은 내 마음을 헤엄친다. 이 생각도 들었다가 뜬금없이 저 마음을 헤엄치다가 구석구석 그 마음을 훑고 나면 묘한 안도감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일기를 쓸 때 정말 중요한 요소는 열정, 감각, 진실함, 연민, 호기심, 통찰, 창의성, 자발성, 예술적 기교, 기쁨이라고 카프가는 말한다. 그러니 맞춤법이나 문법, 단정한 글씨, 어순, 시간 순서, 완성도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게 그의 요지이다. 시원한 그의 일갈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 일기 쓰기는 더 흥이 난다. 무조건 "내 마음대로!". 김형석 교수의 단아하고 자아성찰적인 일기와는 결이 다를 수 있지만 그와 내가 심연이 다르다는 것일 뿐 어쩌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같을지도 모른다.



일기 쓰기는 자기 이해의 과정이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가 인용한 캐서린 맨스필드에 의하면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자기이해에서 나오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타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나라는 존재의 심연이 타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우린 인간이라는 종으로 묶여 있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부터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한 가지 더 기쁘게 발견한 글은 다이애나 애실이라는 고령 작가이자 편집자의 글이다.

"젊을 때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관점에 의해 내가 누구인지가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이런 현상은 중년까지도 계속되는데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은 성이다." 나이가 들면서 타인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면서 비로소 솔직한 글쓰기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오랜 상처가 치유되며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솔직한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일기를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을 좀 더 깊이 사는 일일 것이다.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는 내 삶을 다시 붙잡아 천천히 흘러가게 만드는 일, 다시 생각하고 좀 더 다른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의 순간을 살아낸다면 나의 백세의 일기에는 후회보다는 기쁨이 조금 더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한다. 혹시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충분히 주는 끄적거림을 포기할 순 없다. 현재의 기쁨은 실재이고 미래는 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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