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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Aug 30. 2021

거침없이 직진!

돌싱글즈를보며 생각한 것


아침 일찍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신호 대기에 걸린 채 멍하니 앞 차를 바라보다가 어제의 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퍼뜩 떠올랐다. 누가 남의 연애 이야기를 매주 기다려가며 보느냐고 한심해하던 내가 <돌 싱글즈>라는 돌싱들의 연애 프로그램에 빠져든 것은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후 불과 몇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보다 리얼했고 연기력 훌륭한 배우가 아닌 유리가면을 쓴 일반인의 얼굴에는 각자의 백만 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몰입하면서 그 감정들에 내 마음을 투사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돌싱들은 모두들 젊고 아름다웠으며 활기도 넘쳐 보였다. 서로 처음 만나는 이성들에 향해 설렘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제각각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배신과 아픔을 겪을 만큼 겪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이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노력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남자 출연자 넷, 여자 출연자 네 명이 출연하고 서로에 대한 정보 없이 함께 생활을 하며 서로의 호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여기에 A라는 여성이 있다. 남자 잡지 모델이 직업인만큼 얼굴도 몸매도 아름다웠고 성격도 발랄해서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남자 출연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B라는 남자 출연자도 있다. 호감형 외양에 신중해 보이는 표정 사이에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엿보인다. 철도 공무원으로 수년간 일해오고 있다고 한다. A와 B는 서로 호감이 있어 보였는데 여성 A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반면에 남자 출연자 B는 끝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망설임에는 일곱 살 아이가 있는 A 씨를 자신이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커플 사이엔 또 한 명의 출연자 C가 있었는데 아웃도어 옷 브랜드의 디자이너라는 사십 대의 (출연자 중 가장 고령) 한 인상 좋은 남자였다. 그는 A 씨의 관심이 B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 없이 자신의 감정을 A에게 표현하고 구애했다.


과연 A의 선택은 누구였을까... 두구 두구 두구...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시청자라면 인기남이면서 젊고 멋진 출연자 B를 A가 선택할 것이라 당연히 기대할 테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A는 B를 선택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A는 그녀의 필살기 애교로 데이트를 이어갔고 처음엔 망설임을 보였던 B 역시 그녀에게 점점 빠져드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달콤해졌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슬그머니 아름다운 인기녀 A에게 나를 굳이 대입해보는 상상을 한다. 뭐 상상은 자유이니까. A에게는 두 남자의 선택이 있었다. 자신이 끌리는 인기남이면서 여러모로 조건도 완벽하지만 자신을 선택하는데 약간의 머뭇거림을 보이는 남자 B가 있다. 또 한 남자 C는 호감형이며 성격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끌리진 않았다. 나에 대한 마음이 일관되고 거침이 없으며 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단호히 내가 끌리는 남자를 선택해서 내가 그 남자와 좋은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노력할 자세가 되어 있을까. 나를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남자와 좀 더 쉽게 연애를 하고 싶은 유혹에 끌리지는 않았을까.


이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느냐 아니면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택하느냐의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사랑의 문제만이 아닌 내가 어떤 선택사항 앞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가 호감 가는 사람이라면 그가 망설일지라도 그리고 그 역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만남을 시작해 보는 것은 누가 봐도 타당한 선택이다.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사람이 다소 망설였다는 생각에 흔들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직진해 오는 이가 좀 더 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유혹도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다 보면 어느새 나의 선택은 이도 저도 아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 깊숙이 숨겨둔 묵직한 동굴과 만나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


나의 그런 마음에 보란 듯이 A는 B를 선택했고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데이트는 아주 달콤했다. A는 여전히 사랑스럽게 B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B 역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모습이 정답을 고른 승자의 커플처럼 당당해 보인다. 물론 인생에 정답이 어디에 있나. 이 커플이 쭉 잘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역경을 만나 그때 이런 선택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하지만 심플해 보이는 이런 선택 사항에 나는 왜 머뭇거리며 내 선택보단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랑에 기대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일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가. 연애 외에도 여전히 나는 그런 머뭇거림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했나. 그 말이 인생은 쟁취하는 거라는 말로 내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든다. 누군가가 잘한다고 칭찬해 주며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해오는 일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할 뿐, 내가 가슴 두근거리며 하고 싶어 하는 일엔 곁눈질만 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어영부영 눈치만 보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일은 점점 멀어진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몰려든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그 열정으로 알콩달콩 내 애정을 키워나가는 것. 혹시라도 그 열정이 내가 꿈꾸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실패를 맛보더라도 그 실패를 곱씹으며 또 다른 열정을 키워나가는 용기는 다 어디로 숨어버렸단 말인가.

왜 나는 A도 아니면서 이렇게 흥분하며 그녀의 마음에 내 마음을 투사하는 것인가.


카메라에 비친 그들의 사랑이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다소 왜곡되거나 과장되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보고 싶어 하던 것은 바로 나의 욕망을 인정하고 찾아내는 것과 거침없이 그것을 위해 직진하는 태도였다. 삶의 태도란 나를 둘러싼 모든 선택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치며 내 삶을 뒤흔든다는 것을 나는 돌아온 싱글들의 거침없이 직진하는 태도에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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