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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Sep 15. 2021

죽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1. 일요일 저녁 티브이에서 시끄럽게 뉴스가 흘러나오는 시간이었다. 매일 코로나 환자가 몇 명으로 증가했으며 백신 접종률은 몇 퍼센트에 도달했으며 하는 아나운서의 또렷한 발음이 귀로 흘러들어왔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뉴스가 더 이상 뉴스처럼 들리지 않고 세상의 돌아가는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진다. 


창문 밖으로는 낮의 밀도 높았던 공기와는 달리 가을 저녁의 선선하고 건조한 바람이 스며든다. 순간 남자의 두텁고 짧고 강력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의 진원을 파악하기엔 그 강렬한 비명은 너무 찰나였다. 순간의 강렬하고 절박한 음성이었다. 뒤이어 쿵! 보지 않았지만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와 남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그 사태를 속으로만 감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발걸음을 뗄 수도 없다. 아파트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외엔 적막한 밤이었다. 


그 짧은소리가 밤새 마음에서 울려댄다. 비명을 질렀던 그 남자의 절박함이 무엇이었을지 그 이유가 수만 가지도 더 떠오르는 밤이었다. 짧은 비명은 어느새 잠깐의 불편함이었고 다음날은 아무 일 없듯이 다시 똑같이 돌아간다. 월요일 아침의 활기찬 해가 떠오르고 사람들은 무거운 몸으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무의식적으로 아침밥을 먹고 집으로 나선다. 어제의 그 비명도 세상의 한 소음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이른 아침 경찰이 시신을 수습해갔다는 소식을 동네 이웃분한테 들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선 알려진 게 아무도 없다. 매주 월요일 아침 재활용품을 수거해가듯 영혼이 더 이상 머물지 않았을 그 시신을 경찰이 수습해간다. 다시 일상의 소음은 이어진다. 



2. 남편의 병원에는 노모와 함께 오는 자식들이 많다. 노모인 만큼 자식들의 나이도 중년이 한참 무르익은 오십 대에서 육십 대에 이른다. 오랜만에 오신 장 할머니가 얼굴색이 좋지가 않았다. 퉁퉁한 얼굴의  복상에 풍채도 장골인 할머니이다. 특유한 털털한 웃음과 입담으로 주변에 생기를 불어주는 분이었다. 그 장 할머니가 오늘은 침울하시다. 얼굴도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고 입꼬리도 축 처져 있었다.


"할머니, 안색이 안 좋으신데 무슨 일이 있으세요?"

"온몸이 다 아파요. 어깨도 팔도 허리도 다 돌덩이같애..."

"무슨 힘든 일을 하신 거예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딸이 쓰러졌어. 이 주째 중환자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이 안 돌아온대..."

할머니의 딸이라고 하면 노모와 함께 병원에 오기도 하고 혼자서 허리 치료를 받으러 오시기도 했었고 인심이 좋아 간식거리를 종종 사 오신 걸로 기억한다. 오십 대 초반으로 두 아들이 있다고 했다. 노모를 닮아 얼굴엔 늘 미소가 있고 활달한 분이었다. 평소 수영을 열심히 해서 체력도 좋아 보이는 분이었다. 그녀가 여느 때처럼 수영을 하고 나와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뇌출혈이었다. 뇌출혈도 작은 혈관이 아닌 대동맥이다. 며칠 전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나왔던 그 질병 대동맥류. 일단 터지면 빨리 응급으로 처치해도 예후가 좋지 않다. 힘차게 수영을 하던 그녀가 지금은 의식이 없는 채 아무것도 손쓰지 못하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게 된 것이다. 


노모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손자들이 있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그들을 돌보며 버티고 계셨다. 그녀의 영혼은 어디쯤 닿아 있을까. 그녀에게 머물렀던 그 끔찍하게 흘러갔던 그 순간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사라져 버린 그 찰나가 장 할머니를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게 하고 있다.



3. 병원 아래층에는 미용실이 있다. 오픈한 지 일 년 정도 지난 미용실이다. 삼십 대의 원장 혼자서 하는 작은 미용실인데 틈틈이 원장의 엄마가 와서 일을 도와주신다. 하루는 원장의 엄마가 병원에 올라오셨다. 등, 어깨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미용실의 일 때문이었는지 목 뒤로 뻗치는 근육이 많이 긴장되어 있었다.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는데 얼굴이 우울해 보이고 기운도 없어 보인다.

"목이 불편하니 일하기 많이 힘드셨겠어요..."

"네... 게다가 요즘은 잠을 잘 못 자니 더 힘들어요.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끊었거든요."

"아... 왜 끊으셨나요?"

"너무 오랫동안 약을 먹다 보니 자꾸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겁이 나서요. 지난주부터 약을 안 먹었어요. 그랬더니 잠을 통 잘 수가 없네요..."

그녀는 십 년 가까이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고 했다. 십 년 전 그녀는 이십 세 후반의 장성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연사였단다. 신체 건강하고 씩씩한 이십 대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그녀 앞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일을 감내하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선 우울증 약과 수면제가 필수품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에겐 그 약들이 필요해 보였다. 

"수면제와 우울증 약은 갑자기 끊어버리면 위험할 수 있어요. 다니시는 병원 가셔서 약을 바꾸거나 줄이시는 방법으로 다시 한번 상담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치료를 받고 나가시는 환자의 어깨는 여전히 묵직해 보인다. 죽은 아들의 영혼을 아직도 등 뒤에 업고 다니시는 것 같다. 죽은 자식을 마음으로 묻지 못하는 부모에게 삶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인 것 같다. 


사는 것은 뭐고 죽는 것은 뭘까. 이 질문이 끝도 없이 뱅뱅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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