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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Nov 06. 2021

머리를 자르며 든 생각

나는 왜 이리 까탈스럽나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한 계절에 한 번 정도 가는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계절이 시작할 때 나는 머리 손질을 한다. 손질이라고 해봤자 커트 정도다. 어떨 땐 아주 짧게도 자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너무 길지 않게 혹은 지저분하지 않은 정도로 정리하는 수준이다. 



펌을 하지 않은 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이다. 펌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혹시 시간의 여유가 있더라도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고 있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해봤자 별 스타일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었고 덕분에 나는 손상되지 않은 건강한 두발을 자랑하고 있다. 내 경험상 펌이나 염색을 하지 않으면 내 본연의 컬이 되살아난다. 그 컬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예쁘다. 거기다가 에센스나 영양제를 꾸준히 발라주면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펌을 한 상태의 머리 스타일이 된다. 나만의 머리 관리 비결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지만 펌을 하지 않고 견디는 일을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내가 오랫동안 다닌 미용실은  컷트를 잘하는 곳이다. 원래는 조그만 일인 미용실이었다. 원장이 자르고 머리를 감겨주는 일까지 다해주니 손님의 머릿결이나 성향을 잘 아는 것 같았다. 미용실에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것인지 수입은 별로 시원치 않다고 했다. 그런 원장님이 작년에 미용실을 확장해서 오픈했다. 마음속에 꿈꾸던 미용실의 그림이 있었던 게다. 



미용실을 브랜드화하겠다는 야심으로 상호와 인테리어까지 세심하게 고민해서 내놓은 가게는 아름다웠다. 좋은 동네의 위치했고 디자이너들도 두 명이 더 있으며 도와주는 이들까지 합하면 더 이상 동네 가게라고 부를 수 없는 규모였다. 혼자서 할 땐 없었던 음료 서비스도 추가되었고 머리를 감기는 직원의 깍듯한 태도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규모답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미용실을 보고 있자니 원장이 노력을 많이 했구나 싶었다. 



불편했다. 원장의 컷트 기술은 여전했지만 원장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직원이 손님에게 응대를 잘하고 있는지, 머리카락을 잘 쓸어내서 매장이 깨끗한지, 그리고 전화를 빨리 받는지 등등을 보느라 원장은 온전히 손님을 바라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손님과 스몰 토크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예전의 그런 교감은 기대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끊고서 직원들에게 지시하기 바쁘니 나 역시 말을 걸지 않는 게 좋겠구나 생각했다. 



미용실의 매장은 아름답고 직원들은 로봇처럼 깍듯하게 말을 건네고 원장의 컷트 기술은 그리 달라진 게 없는데 왜 내 마음은 불편했을까. 원장이 일일이 직원들을 감시하며 이것저것 잔소리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도 힘들었고 손님인 나는 투명 인간처럼 주는 서비스를 꼼짝없이 받아야만 하는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원장은 손님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원장의 마음속에 그려둔 대형 미용실 서비스의 이미지를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은 원장의 눈에는 직원의 잘못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순간 나 역시 저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든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잘못을 크게 마음에 두면서 정작 내가 중요한 것은 잊고 산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꼰대 짓 한 것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긴장이 되었다. 



미용실은 아직 과도기이기에 그럴 수 있다. 다음 계절에 컷트를 하러 가면 안정된 모습으로 원장은 머리를 다듬고 직원들은 숙련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예전의 그 미용실이 그리운 건 뭘까.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은 지금의 미용실에서 기계적인 서비스를 받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건 내 개인적인 취향인 건지 아니면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걸 못 참고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글을 쓰고야 마는 나는 역시 점점 까탈스러워지는 중년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다 계절마다 가는 미용실 발걸음도 끊지 않을까 싶어 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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