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by 소록소록


남편은 작은 통증 클리닉 병원을 운영한다. 환자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다. 칠십 대, 팔십 대, 그리고 심지어 구십 대 노인들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다. 사, 오십대의 젊은 환자들도 간간이 오는데 그중에는 청소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 사람의 몸이란 게 정직해서 비슷한 노동을 하는 분들에겐 비슷한 양상의 통증이 나타나고 또 비슷한 치료로 인해 좀 호전되었다가 다시 몸을 과하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통증이 재발하는 그런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인상 깊었던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오는데 내가 듣는 통증의 정도는 그들의 일의 강도를 상상하게 되고 정직하게 몸으로 일해서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시지프스의 돌을 으라차차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수없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삶이란 것을 알지만 그 돌을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이 인간의 원죄이지 않을까 하는 암울함이 몰려든다.



어제는 육십 대 후반의 아주머니( 절대 할머니라고 칭할 수 없는 외모이다)가 오셔서 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치료 전의 체온과 맥박을 재보니 정상이다. 이번엔 혈압을 쟀더니 수치가 매우 높다. 평소의 고혈압 환자가 아니었음을 고려하면 분명 뭔가 중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둣 했다.

"요즘 힘들거나 고민이 있으셨나요?"

"아... 네... 제가 좀 신경 쓸 일이 있어서 마음이 힘들긴 해요..."

"이렇게 혈압이 높을 때 치료를 하면 더 힘들 수가 있으니, 오늘은 일단 물리치료만 받고 가시고 내일 좀 안정이 되면 다시 오셔서 치료받으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이렇게 시작한 대화는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주머니의 남편이 지난주 대수롭지 않은 증상으로 동네 병원에 들렀다가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버린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 병원에서는 지금으로선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앞으로 잘 버텨도 3개월을 넘지 못할 거라고 했단다.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180도 바뀌어 버린 세상에 놓인 것이었다.



웬만하면 못 고칠 게 없는 지금 세상에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배에 찬 복수만 빼내 줄 뿐이었고, 아주머니는 이제 째깍째깍 생명의 타이머가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는 남편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사람의 몸은 참으로 과학적이면서도 비과학적이다. 아주머니에겐 아무런 질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암 진단이 그녀를 아프게 만든다. 가슴도 답답해지고 어깨와 온몸이 굳은 것 같은 통증이 밀려온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그리고 그 남편분의 마음은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사고에 의해 아무 준비 없이 죽는 죽음, 아니면 언제 죽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점점 삶에 지쳐가는 지난한 죽음, 앞으로 3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받고서 짧은 내 생을 마감하며 기다리는 죽음 등등.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환자의 남편처럼 내 죽음을 알고 준비하는 기간이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당해보지 않고서야 그 고통과 당황스러움을 짐작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가족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큰 고통일 것 같다) 내 삶의 관점에서는 스스로 정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럼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우린 자연스럽게 이런 대화로 넘어갔다. 이런 대화가 억지스럽지 않은 게 인간의 삶이 길어야 백 년 남짓이니 누구에게나 시한부 인생이긴 하기 때문이다. 내게 이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면, 십 년의 시간, 그리고 오 년, 삼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면을 떠올려도 지금의 시간과는 다른 삶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크게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아등바등 야심을 키우는 성격이 아닌 데다가 게으름과 적당히 타협하며 느림보 삶을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이런 질문이 훅 하고 들어왔다면 아마도 여러 가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화려한 크루즈도 한번 타봐야 하고 또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일몰을 본다던가 아니면 북유럽 어느 아름다운 산골로 오로라를 보러 떠나는 그런 삶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그것들은 보고 싶다. 하지만 내 삶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다면 아마도 그런 아름다운 곳을 떠올리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살거나 추억을 쌓아온 곳을 돌아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지만 멀어져 버린 친구를 만난다거나 소중한지는 알지만 절대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던 가족들에게 좀 더 잘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을 것 같다.



쓰다 보니 너무 노인성 사고방식이다. 젊을 적엔 내가 못 해 본 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방점을 두게 된다. 또 앞으로는 어떻게 생각이 바뀔는지도 알 수가 없다. 진실은 삶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함께 사랑하며 살 날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날 아주머니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다행히 혈압은 조금 안정을 찾았다. 남은 그 부부의 시간이 천천히 그리고 행복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길고 짧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우리 모두에겐 주어진 시간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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